"강제징용 노동자상, 일본보다 한국 세우는 데 더 걸렸네요"
김운성 작가 "징용 피해자 시리즈로 만들어 나갈 것"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일본에는 바로 세워졌어요.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세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네요."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든 작가 김운성씨는 12일 서울 용산역광장에서 열린 이 동상 제막식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씨와 부인 김서경씨가 함께 제작한 노동자상은 지난해 8월 24일 일제 강제징용 역사를 증언하는 일본 단바망간기념관에 처음 세워졌다. 김씨 부부와 첫 번째 노동자상 건립을 함께한 민주노총·한국노총은 서울에도 같은 동상을 세우자고 뜻을 모았다.
일제가 강제징용자들을 일본이나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로 보내기 전 집결시킨 '전초기지'였던 용산역광장을 건립 장소로 정했다.
두 번째 동상 제작은 바로 이뤄졌지만,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양대노총과 시민단체들은 당초 올해 삼일절에 제막식을 하려고 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국가 부지라 부적절하다"며 동상 건립을 불허했다.
정권이 바뀌고서야 노동자상은 용산역광장에 세워질 수 있었다. 일본에 첫 동상이 세워지고서 약 1년이나 지난 뒤다.
김씨는 "일본에는 바로 세워졌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세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만들긴 작년에 다 만들었는데…. 아직도 친일파들이 알게 모르게 작동한다는 걸 방증하는 거라고 본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도 김씨 부부 작품이다. 2011년 우연히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 현장을 지나다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갔다. 그 뒤부터 부부는 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천착해왔다.
그런데 평화의 소녀상과는 달리 이번 노동자상은 '예술로의 승화' 측면에서 성에 차지 않는다고 김씨는 고백했다.
그는 "조사를 하다 보면 듣게 되는 애절하고 애잔한 많은 얘기를 형상화하면서 승화시켜야 하는데, 소녀상은 그게 어느 정도 됐다"면서 "그러나 노동자상은 승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슈가 하나로 좁혀지는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징병, 광산, 농장, 군수공장, 토목공사 등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겪었다"면서 "이분들의 고통을 하나의 형상으로 압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 완성을 못 한 느낌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래서 김씨는 앞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시리즈'로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이번에는 탄광에서 일한 피해자만을 형상화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착취당한 피해자들도 반드시 작품으로 다뤄 사람들이 강제징용 피해자 모두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
조선인 피해자뿐 아니라 이들을 도와준 일본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역사학자들이 진실규명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예술로 대중에게 진실을 알리고, 슬픔과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면서 "그래야지 더 참혹한 일을 안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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