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건보 적용 늘리는 건 좋지만 재정이 걱정된다
(서울=연합뉴스) 지금까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던 3천800여 개 항목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보험급여 대상으로 바뀐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국민 의료비 부담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비급여진료 항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내용의 건강보험 보장강화 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비급여 항목은 환자 본인이 비용을 차등 부담하는 조건으로 보험급여를 우선 적용하고 나중에 적합성을 따져 급여항목 전환 여부를 최종적으로 가린다. 대책이 차질없이 실행되면 비급여 항목은 현재의 3분의 1로 줄고, 전체 환자의 연간 비급여 의료비 부담액도 13조5천억 원(2015년 기준)에서 4조8천억 원(2022년 기준)으로 64% 감소한다. 대표적으로 초음파,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다빈치 로봇수술 등이 비급여 항목에서 빠진다고 한다.
'3대 비급여' 의료비로 꼽히는 간병비와 선택진료비, 상급 병실료도 크게 개선된다. 보호자 대신 전문 간호사가 간호와 간병을 함께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을 7월 말 현재 2만3천400여 개에서 2022년까지 10만 개로 늘리고 특진비를 받는 선택진료제는 내년부터 없애기로 했다. 또 4인실까지로 제한됐던 보험급여 대상 병실을 내년 하반기부터는 2∼3인실로 확대키로 했다. 여기에다 신포괄수가제 적용 의료기관을 현재 42개 공공의료기관에서 민간을 포함한 200곳으로 늘리고, 소득 하위 계층에 적용되는 연간 본인부담상한액도 낮추기로 했다. 신포괄수가제는 특정 질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한 진료비를 포괄적으로 정해놓고 진료의 종류, 양과 관계없이 정해진 진료비만 받는 제도다. 이와 함께 노인치매검사에 급여가 적용되고 노인 틀니, 임플란트의 본인 부담률도 50%에서 30%로 낮아진다.
이번 대책으로 고액의 병원비로 인한 가계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전체 의료비 대비 가계 직접 부담률은 36.8%(2014년 기준)로 OECD 평균(19.6%)의 2배에 가깝고, 멕시코(40.8%)에 어어 OECD 내에서 두 번째로 높다. 환자 본인이 전액을 부담하는 비급여진료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들의 본인 부담률도 20∼60%로 높은 편이어서 비급여진료가 많은 큰 병에 걸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계 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가구가 전체의 4.5%에 달한다는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이 좋더라도, 재원 조달이 가능해야 그 취지도 살릴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 수준이 높아지면 혜택을 보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은 줄겠지만 건보재정은 나빠지고 국민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대책을 추진하는 데 2022년까지 5년간 30조6천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우선 누적된 건강보험 흑자 20조 원의 절반을 투입하고 나머지는 재정으로 충당한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정부는 국민부담을 고려해 연평균 건보료 인상률은 지난 10년간 평균(3.2%)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 정부 재정 20조 원을 쏟아붓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강한 의지로 이 부분을 관철한다고 해도 그다음이 더 큰 문제다. 쌓여 있는 건보 흑자 자금을 수혈하고 연 수조 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게 지속가능한지 의문이다. 건보료에 손을 대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건보재정 추계를 세밀히 살펴보고 운용계획에 무리가 없는지 철저히 재점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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