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강요' 감독-여배우 갈등 잇따라…영화계 실태조사 나서
성폭력 실태조사 바탕으로 대응기구 마련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베드신과 노출 장면 등을 둘러싼 감독과 여배우 간 갈등이 최근 잇따라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영화계가 대응에 나섰다.
3일 영화계에 따르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인의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차별)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영화 관련 단체들은 5월부터 시작한 실태조사 결과가 10월 초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범 영화계 성폭력 대응기구를 구성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영화계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최근 노출 장면이나 베드신 등을 둘러싼 갈등이 잇따라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법적공방으로까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최근 김기덕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언사과 베드신 강요 의혹으로 여배우에게 고소당했다.
이 여배우는 2013년 개봉한 김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를 촬영하던 중 감정 이입을 위한 연기 지도라는 명목 아래 뺨을 맞고 폭언을 들었으며 대본에 없는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영화 출연을 포기했던 이 배우는 영화계 내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고소를 포기했다가 올해 초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함께 김 감독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앞서 영화 '전망 좋은 집'의 이수성 감독과 배우 곽현화도 노출 장면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이 감독은 2012년 10월 '전망 좋은 집' 극장 개봉 당시 주연 배우인 곽 씨의 요청에 따라 가슴 노출 장면을 삭제하고 개봉했으나, 2013년 11월에는 문제의 장면을 추가해 IP(인터넷) TV 등에 서비스했다.
이에 곽현화는 이 감독을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했고, 올 초 법원은 1심에서 이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작년에는 일명 '남배우 A씨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은 2015년 7월 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가정 폭력 장면을 찍던 중 남자 배우가 여자 배우의 속옷을 찢고 성추행을 했다며 여배우가 남배우 A씨를 강제추행치상죄로 고소한 사건이다. 작년 12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잇단 소송으로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하자 영진위는 실태조사에 나서는 한편 성폭력 범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위원회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고 영진위 지원 영화에 대해서는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영화산업노조와 여성영화인모임 등 영화계 관련 단체들은 영화 현장의 성폭력 문제를 신고받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을 할 대응기구를 준비 중이다.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 한인철 팀장은 "이런 일들이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발생했지만, 출연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려운 대부분의 배우는 약자의 입장이어서 향후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은 "감독과 제작자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즉흥적으로 강요하며 이 과정에서 약자인 배우나 스태프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는다"며 "몇몇 유명 스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는 감독이 약속했던 것보다 과한 요구를 하더라도 반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할리우드는 출연 계약 시 노출 장면에 대해 세세하게 합의하고 서명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하게 접근한다"며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과 배우 간 세밀한 계획과 구체적인 계약을 통해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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