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발견을 해낸 과학자들의 '머릿속'을 탐색하다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책 '과학자의 생각법'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국내에서는 왜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쏟아진다.
신간 '과학자의 생각법'(을유문화사 펴냄)에서 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뛰어난 창조력을 보인 천재들이 사용한 생각의 도구들을 제시해 베스트셀러가 된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국 미시간주립대 생리학과 교수가 역사 속 저명한 과학자들이 '어떻게' 위대한 발견에 이르게 됐는지 그들의 생각법을 탐색한다.
책은 생물학자와 역사학자, 화학자, 과학사학자 등 가상의 인물 여섯 명이 엿새간의 가상 토론을 벌이는 형식으로 '과학적 발견'의 과정을 찾아간다.
실제 과학자들이 남긴 노트와 편지, 자서전, 회고록을 재구성한 가상의 토론 속에는 미생물을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와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표백에 염소를 활용하는 방법을 발견한 화학자 클로드 베르톨레, 첫번째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삼투압 원리를 발견했던 야코부스 반트 호프의 발견법과 생각법이 등장한다.
가상 토론 끝에 도출된 위대한 과학탐구자를 길러내는 여러 조건 중에서는 통념을 벗어나는 것들이 눈에 띈다.
위대한 연구자 중 많은 이들은 동시에 여러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했다. 흔히 좁은 분야를 파고들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과학에 공헌했던 과학자들은 보통 서너 가지 문제를 동시에 연구했고 연구 중에 발생한 문제를 탐구해 끊임없이 연구의 초점을 바꾸면서 연구 다양성을 성취했다.
5∼10년마다 연구 분야를 바꾸기도 했다. 새로운 주제를 택함으로써 '신출내기'로 돌아오고 그럼으로써 이미 익숙해진 연구 방식과 사고 유형을 깨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다. 뢴트겐의 X선 발견이나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연구비 지원 체계로 본다면 원래 연구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현재에 있었다면 우연히 발견한 주제로 연구를 전환할 경우 연구비가 끊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돈과 시설, 장비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흔히 연구가 발전할수록 복잡하고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혁신적인 실험은 거의 언제나 단순한 실험이었다. 과학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껏 탐구할 수 있는 안전한 토대와 연구 가능성을 바꿀 수도 있도록 돈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비 지원에 대해서는 '프로젝트'가 아닌 '사람'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측과 실수를 장려하고 미지의 대상을 탐구하려는 사람을 찾아 무엇이든 연구하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다.
족적을 남긴 과학자 중 많은 이가 화가나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음악가, 시인, 소설가 등으로 활동하며 예술가적 성향을 지녔다는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연구하는 학문 분야의 지식 습득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미술이나 연극, 문학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를 통합하고 재창조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할 줄 아는 정신을 갖춘 사람들에게서 최상의 과학과 기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단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어떤 결론에 이르는 방식 대신 다소 두서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읽기가 쉽지 않다. 이런 구성 형식 역시 과학자들이 꼭 정해진 순서에 맞춰 논리적 단계를 통해 결론에 이르기보다는 우회하기도 하고 때론 곁길로 새기도 하면서 발견하고 발명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원서는 1989년 출간됐지만 여전히 책의 내용은 유효하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로 30년 동안 과학 연구계획은 어마어마하게 성장했지만 이런 성장은 과학에서 더 많은 탐사와 개척 연구에 쏟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보다 확실한 기술에만 주력해 보수적인 투자 전략이 지배하는 거대한 사업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우수하고도 실용적인 발명품은 거의 언제나 이미 기술적 목표나 응용법을 염두에 두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기초 연구의 순수성에서 생겨났다"면서 "기초원리는 필요가 만드는 연구가 아니라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로 발견되며 이것이 훨씬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권오현 옮김. 776쪽. 3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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