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50년] ②글로벌 안보격전장 된 동남아…제각각 노선
美中日 등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힘의 논리'에 회원국 분열
한반도 긴장 고조 속 한국·미국·북한도 아세안에 협력 호소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출범 50주년을 맞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와 관련해서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중요한 위치에 섰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세력 팽창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일본 등이 충돌하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
또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위치에 서면서 유명무실화한 북핵 6자회담 당사국이 모두 참여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은 한반도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대안이 됐다.
지난 1967년 공산주의 팽창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창설된 아세안은 경제·문화 분야를 넘어 정치·안보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왔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은 역내 핵심적인 다자 협의체로 성장했다.
특히 아세안 10개 회원국과 EU 의장,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등 10개 대화 상대국, 북한 비롯한 기타 7개국 등 총 27개국이 참여하는 ARF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최대 안보 이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남중국해 대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해온 중국과 이에 맞서는 미국, 일본 등은 아세안 회원국을 하나라도 더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강대국의 줄다리기 속에 아세안 회원국들의 남중국해 노선은 제각각이다.
영유권 분쟁 당사국인 필리핀은 국제 중재재판에서 승리하고도 친중(親中) 노선을 택했다.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중국의 경제·군사 지원을 받는 길을 택했다. 전통 우방인 미국에는 등을 돌렸다.
또 다른 분쟁 당사국인 베트남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맞서면서도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비당사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친중 행보를 지렛대로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 열린 아세안 관련 회의는 파행의 연속이다.
작년 6월 중국-아세안 외교장관 특별회의에서는 중국을 비판하는 성명이 발표 하루 만에 철회되는 해프닝이 빚어졌고, 지난 4월 아세안 정상회의는 폐막 후 반나절이 지나서야 '지각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남중국해 관련 성명에 중국을 비판하는 표현은 넣지 못하는 분쟁 당사국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만장일치' 합의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경제지원 등 '당근'을 앞세운 중국의 '각개격파'에 아세안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인도네시아 유력 일간 자카르타 포스트는 최근 사설에서 50돌을 맞는 아세안을 '공동체보다는 이웃에 가깝다'(more a neighborhood than a community)고 꼬집었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ISIS)의 선임 연구원인 분 나가라는 최근 언론기고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등의 군함과 잠수함이 북적이는 남중국해에서 아세안 회원국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을 비판하면서 '아세안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남중국해 문제와 함께 아세안은 한반도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상황이 됐다. 북핵문제를 논의해온 6자회담 틀의 붕괴, 북한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가 자연스레 이런 지형을 만들었다.
아세안 회원국들과 비교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로 전세계를 향해 위협의 수위를 높이자, 미국은 아세안 회원국을 설득해 북한의 '돈줄 차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세안 회원국 지도자들과 북한의 핵 위협 공조를 논의하고 북한과의 관계 단절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아세안 특사로 보내 북한 핵 위협에 대한 협조를 구했고, 외교 채널을 통해서도 정기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재고 등을 요청하고 있다.
동남아는 물론 미국까지 사정권에 둔 북한의 ICBM 개발을 전후로 아세안 내부에서도 북핵 위협을 체감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세안 외무장관들은 지난 4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비판한 바 있다.
또 아세안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대북제재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북핵 6자회담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도 나온다.
위기감을 느낀 북한도 아세안에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다.
2000년부터 ARF 외무장관 회담에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북한은 지난해 9월 ARF에 리용호 외무상을 보내 의장성명에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지적하는 언급을 반영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또 리 외무상은 지난 3월 말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반도'핵 재앙'을 막기 위해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또 마닐라에서 열리는 올해 ARF 회의에도 리 외상의 참석을 일찌감치 확정하고, 최희철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사전에 파견해 이견 조율을 시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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