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권력 '쑨정차이 변수'에 지각변동…시진핑 권력 공고화(종합)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의 유력한 차기 주자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실각이 공식화됨에 따라 중국 권력판도에 엄청난 변수가 생겼다.
쑨 전 서기가 면직 조치된 이후에도 수평 이동 가능성을 점치며 생존하리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결국 중국 당국은 24일 관영 신화통신 보도를 통해 비리 의혹 조사를 이유로 한 그의 실각을 공식 확인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25일 1면 논평을 통해 그의 실각이 엄중한 기율 위반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민일보는 이날 '철의 기율로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쑨정차이에 대한 조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엄격한 당관리와, 당 기율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충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논평은 또 저우융캉(周永康)·보시라이(薄熙來)·쉬차이허우(徐才厚)·궈보슝(郭伯雄)·링지화(令計劃)·쑤룽(蘇榮) 등 부패혐의로 낙마한 고위직을 거론하며 "당기율은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며 당내에 기율의 속박을 받지 않는 특수 조직이나 특수 당원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963년 9월생인 쑨 전 서기는 2012년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대)에서 25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위원에 최연소자로 선출됐다.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당서기와 함께 단 두 명의 류링허우(60後·1960년대 출생세대)로 이번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 대기 중이었다.
시진핑의 전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천거로 정치국 위원으로 진입한 이들은 차기 6대 지도부를 향한 1, 2위 선두주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문화대혁명 이후 격대로 후계자를 정하는 '징검다리식 승계' 관례와 총서기직의 10년 임기 내규에 따라 시진핑은 오는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물러나면서 전임 4대 지도부가 낙점한 6대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야 한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은 19차 당대회에서 차기 주자군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려 리더쉽 경험을 거치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 6대 지도자 후보군은 1인 체제 권력을 추구하는 강력한 5대 지도자 시진핑을 만나 두 명 중 한 명이 중도하차하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현재 쑨정차이와 관련한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2012년 시 주석의 집권 과정에서 낙마한 전임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가 남긴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그의 부인 후잉(胡穎)이 비리로 낙마한 링지화(令計劃) 전 중앙판공청 주임의 부인 구리핑 등과 함께 민성(民生)은행의 특별관리 대상인 '사모님 클럽'의 일원이라는 의혹도 낙마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쑨정차이가 베이징시 비서장 시절 사스 대책, 올림픽 준비와 관련돼 당시 베이징시 류치(劉琪) 서기와 왕치산(王岐山) 시장간 갈등에서 류 서기를 편들었던 일로 현 반(反)부패 사령탑인 왕 서기에 찍혀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왕 서기는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주석과 함께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충칭을 한 번도 시찰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순이(順義)구 서기 시절 원자바오 부인에게 토지 임대를 허가해주고 항상 명품 시계를 차고 다녔던 과거사도 거론된다.
하지만 쑨정차이의 낙마는 그의 개인 비리 의혹이나 정치적 실책보다는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되는 권력재편 구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쑨정차이는 흔히 후진타오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 퇀파이(團派) 계열로 분류되곤 했지만 그는 젊어서 공청단 활동을 한 적이 없다. 후춘화는 퇀파이 색채가 진하지만 쑨정차이는 산둥(山東) 라이양(萊陽)농학원 졸업에 베이징시 농림과학원을 거쳐 농업부 장관을 지낸 '농림통'이었다.
베이징시 순이구 서기와 베이징시 비서장을 발판으로 2006년 농업부장에 이어 2009년 지린(吉林)성 서기를 거친 그는 2012년 정치국 위원으로 발탁되며 일약 정치 스타로 떠올랐다.
홍콩 01망은 쑨정차이가 순이구 서기 시절 상부에서 지목한 '들러리' 낙선 예정자로 베이징시 당위원회 상무위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덜컥' 당선되는 행운으로 인해 출세길이 트이게 됐다는 일화를 전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내에서는 '정치 사고'라는 뒷말이 나왔으나 중앙조직부와 베이징시 모두 쑨정차이 당선 경위를 조사하지 않고 덮기로 하는 바람에 쑨정차이가 '청운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퇀파이 세력과 장쩌민(江澤民) 계열 간에 권력다툼이 치열했던 2012년 18차 당대회 시절 쑨정차이는 양대 계파 간 균형의 산물로 정치국 위원에 발탁되는 행운까지 겹쳐 안았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천거를 받는 형태였지만 실제로는 장쩌민 시대 실세인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이 추천한 격대 후계자였다는 게 홍콩 매체들의 분석이다.
쑨정차이는 베이징농림과학원 부원장 시절 장쩌민의 여동생 장쩌후이(江澤慧) 임업과학원장의 천거를 받았고 인연을 맺은 쩡칭훙의 강력한 후견을 받기도 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중문판이 전했다.
쑨정차이의 낙마는 5년 전 시진핑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가 실각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보시라이에 앞서 11년 전에는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시 서기의 낙마가 있었다.
한때 장쩌민이 자신의 격대 후계자로까지 눈여겨 뒀던 인물로 알려졌던 천량위는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와 정책 추진을 놓고 충돌한 이후 사회보장기금 비리로 낙마한 인물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체제의 '눈엣가시'였던 그는 16차 당대회 직후인 2006년 9월 면직 처분된 다음 2008년 징역 1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는 중이다. 그의 상하이시 서기 자리를 시진핑 주석이 넘겨받은 뒤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보시라이 역시 당시 측근인 왕리쥔 공안국장이 2012년 2월 미국총영사관으로 도피한 사건이 불거지며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이던 2012년 3월 비리 혐의로 충칭시 서기직에서 면직됐다.
보시라이와 천량위는 모두 장쩌민 계열의 인물들로 당시 정치국 위원을 지내다 부패비리로 숙청되는 과정을 거쳤다. 거물급 인사들이 수감되는 베이징 친청(秦城) 교도소에 갇혀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1인 체제를 지향하는 시 주석이 장쩌민 세력의 남은 잔재를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권력투쟁 과정에서 쑨정차이를 마지막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당장 쑨정차이의 탈락이 공식화하면서 올 가을 19차 당대회에 등장할 차기 지도부의 면면과 쑨정차이를 대신할 주자의 등장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천다오인(陳道銀) 상하이 정법학원 교수는 "이번 파문의 중요한 점은 시 주석이 전임 후진타오·원자바오의 후계구도를 깨트렸다는 것"이라며 "쑨정차이 낙마는 시 주석이 베이다이허 회의 전에 정적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고 전했다.
시 주석 자신이 중국 공산당의 핵심 결정자인 만큼 자신의 뜻에 따라 인사와 후계를 정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외신들은 특히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의 발탁을 통해 시 주석이 19차 당대회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집권 2기 체제에 친위세력을 전진 배치하겠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시 주석이 앞으로 10년까지를 내다보고 권력구도에 중요한 포석을 뒀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천 교수는 특히 천민얼이 앞으로 시 주석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 56세의 천민얼은 당내 경쟁자보다 나이가 비교적 젊어 이번에 정치국 위원에 진출한다면 앞으로 2∼3차례의 5년 임기를 계속할 수 있는 만큼 그의 임명은 매우 중요하고 전략적인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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