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작가와 독자의 두뇌게임
존 딕슨 카 '세 개의 관'·치넨 미키토 '가면병동'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안쪽에서 잠겨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방. 타살이 확실해 보이는 시신.
밀실 트릭은 추리소설에서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을 고조시키는 고전적 장치다. 영국 작가 H. R. F. 키팅은 밀실 트릭을 가리켜 "추리소설을 쓰려고 생각하는 작가에게는 궁극적인 유혹"이라고 했다.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로 꼽히는 존 딕슨 카(1906∼1977)의 1935년작 '세 개의 관'(엘릭시르)이 번역돼 나왔다. 영미권 미스터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장편 밀실소설' 1위로 선정된 작품이다.
첫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그리모 교수. 범인은 드나들 틈 없는 방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그를 협박했던 마술사 피에르 플레 역시 보이지 않는 살인자의 총에 맞아 살해당한다.
유력한 용의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증거들은 범행의 불가능성만을 가리킬 뿐이다. 탐정 기디언 펠이 교묘한 트릭을 풀어가는 와중에 흡혈귀 전설과 생매장 등 부차적 수수께끼가 오컬트 분위기를 더한다.
작가는 소설 속 한 장(章)을 할애해 독자를 상대로 밀실 트릭을 강의한다. 기디언 펠이 밀실 트릭의 여러 유형을 정리해 소개한다. 이를테면 살인범은 방 안에 미리 기계장치를 설치해둘 수 있다. 예를 들면 전화 수화기 속에 총탄 발사 장치를 숨겨놓는 경우다. 문이 안쪽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방법도 여럿이다. 이동윤 옮김. 512쪽. 1만5천200원.
독자적 전통을 구축한 일본 미스터리 문학계에서 '클로즈드 서클'은 영미권의 '밀실'보다 조금 의미가 넓다. 방이든 건물이든 섬이든, 외부와 고립된 한정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형태다. 2011년 데뷔한 일본 작가 치넨 미키토(知念?希人·39)의 '가면병동'(아르테)은 클로즈드 서클을 표방한 본격 미스터리다.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선배의 부탁으로 교외의 요양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한다. 혼수상태에 가까운 환자가 많아 그저 밤샘 대기만 하면 되는 '꿀알바'다. 피에로 가면의 남자가 복부에 총상을 입은 여자를 병원에 데려오면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남자는 편의점 강도를 벌이다가 여자를 인질로 잡고 병원에 들어왔다. 살인범은 되기 싫으니, 여자를 살려내면 다음달 새벽 5시에 조용히 나가겠다며 슈고를 윽박지른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슈고는 병원에서 수상한 낌새를 챈다. 단순 요양병원인데도 수술한 환자가 여섯 명 더 있었다. 휴대전화를 전부 걷어가겠다는 원장도 미심쩍다.
그러던 중 "원장을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사키 간호사가 살해당한다. 피에로는 왜 병원에 들어왔을까. 슈고는 아침에 무사히 병원을 나갈 수 있을까. 소설은 한밤중 병원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을 놓고 벌어지는 어드벤처 게임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현직 내과의사이기도 하다. 김은모 옮김. 312쪽. 1만4천원.
에드거 앨런 포의 1841년작 '모르그 거리의 살인' 이래 밀실은 추리소설의 대표적 소재이자 배경이었다. 한국 작가의 밀실 추리소설은 드문 편이지만 역사가 짧지는 않다. 추리소설 해설가 박광규에 따르면 1935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조광'에 연재된 신경순의 '제2의 밀실'이 한국 최초의 밀실 추리소설이다.
지금의 을지로에 있는 국제은행의 대형금고 속에서 신원 불명의 남자가 둔기에 머리를 맞은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은 3차례 연재되고 예고 없이 중단됐다. 박 해설가는 "한국 추리문학계에서 밀실은 작가의 통과의례 정도로만 그쳤을 뿐 많은 독자에게 기억을 남겨준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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