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탓 아프리카 유목민 사라지나
에티오피아 유목민, 계속된 가뭄에 가축 잃고 난민 전락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제이나브 타헤르(60)는 한때 양, 염소, 소 떼 350마리와 9명의 자녀를 이끌고 광활한 에티오피아 초원을 누비는 부유한 유목민이었다.
그러던 그가 임시 난민캠프에서 수천여명의 기후 난민과 함께 국제구호단체들의 식량 지원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이 부유한 유목민이 졸지에 난민으로 전락한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 에티오피아 남동부 소말리 지역에 비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가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그의 가축떼를 먹일 풀이 자라지 못했고 지난봄에도 기다리던 비는 끝내 오지 않으면서 가축떼가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국제이주기구(IOM) 집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남부 소말리 지역에서는 계속된 가뭄으로 최근 몇 달 새 타헤르 같은 유목민 45만여명이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에티오피아는 태평양의 엘니뇨 현상에 따른 가뭄으로 북부와 중부의 비옥한 고지대가 메말라 1천만여명이 구호 식량에 의존하는 난민으로 전락했다.
올해는 인도양의 기온 변화로 유목민이 주로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남부와 동부가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에티오피아 남동부 소말리 지역은 전체 인구 500만여명의 40%가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인근 소말리아나 남수단 등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이웃 국가들과 달리 정부가 제 기능을 하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지난해 정부가 자체 조달한 7억달러(약 7천850억원)에 10억달러(약 1조1천220억원)에 가까운 국제사회의 구호기금이 가뭄 난민 구호에 투입됐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올해는 780만여명이 10억달러 어치의 구호 식량이 필요하지만 국제구호단체들이 내전으로 황폐화한 인근 소말리아와 남수단 난민 지원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에티오피아 정부의 근심은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속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장기적인 해결 방안 모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국가재해위원회를 이끄는 미티쿠 카사 위원장은 "우리도 비상대응 조치는 진통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며 다양한 수자원 확보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곳곳에 깊은 우물을 설치하고 지역 내 강에서 물을 끌어와 유목민들이 관개농업과 소규모 농장 생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소말리 지역 지방정부의 알리 마아메이 알리는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있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얘기하고자 의식 전환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유목민들이 관개지에서 농사로 식량과 사료를 얻고 가뭄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준의 소규모 목축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유목민들이 대대로 이어온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타헤르와 같은 난민캠프에서 지내는 키라 알리(63)는 "우리는 농사짓는 방법을 모른다"며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에티오피아 담당 사미르 완말리는 "에티오피아 어디에서든 기후 충격(climate shock)의 빈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헤르는 "비가 내리더라도 우리에게는 더는 가축이 없다"며 "이제 다시 유목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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