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 이주노동자 장기체류 길 열린다…새 비자제도 도입(종합)
4년 이상 근무경험자, 숙련기능 등 일정요건 갖추면 2년마다 비자 연장
비전문·방문·선원 취업 비자체류 55만명…'뿌리산업' 노동자 등 해당
법무부 '인력난' 중소업계 요구 수용…향후 '일자리 갈등' 유발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 있는 주조업체 P사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베트남 출신 직원을 고용해 4년간 숙련공으로 키웠다.
하지만 그는 다음 달 체류기한 만료로 한국을 떠나야 해 숙련된 대체 인력을 찾느라 업체 대표의 시름이 깊어졌다.
앞으로는 산업현장의 이 같은 숙련인력 확보와 인력난 문제가 개선될 전망이다. 숙련된 기술을 가진 이주노동자가 국내 산업현장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길이 열린다.
법무부는 외국인 숙련기능공의 장기체류 길을 터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외국인 숙련기능 점수제 비자' 제도를 다음 달 1일부터 시범운영 한다고 19일 밝혔다.
비전문취업(E-9)과 방문취업(H-2), 선원취업(E-10) 비자를 받아 4년 이상 국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주노동자가 연령과 경력, 숙련도, 한국어 능력 등을 평가받은 뒤 일정 점수를 넘기면 '외국인 숙련기능점수제 비자'(E-7-4)로 전환할 수 있다.
숙련기능점수제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는 비자 요건을 유지할 경우 2년마다 심사를 거쳐 체류를 연장할 수 있다.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6개 기술 업종은 제조업의 기반에 해당하는 점에서 '뿌리산업'으로 간주해 정부로부터 여러 특혜와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국내 기술인력 사이에서는 일이 고되다는 이유만으로 '3D 업종'으로 치부되면서 업체들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취업비자는 4년이 지나면 기한 만료로 귀국해야 해 산업계에서 '일 할 만하면 떠나게 한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왔다.
정부는 합리적인 체류비자 개선방안을 모색했고, 법무부는 최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점수제 비자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계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뿌리산업'과 농림축산어업 등에서 4년 넘게 일한 외국인 근로자가 적용 대상이 된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비전문취업 비자 체류자는 27만9천187명, 방문취업 비자 체류자는 25만4천950명, 선원취업 비자 체류자는 1만5천312명이다. 세 비자로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는 55만명에 달한다.
정부는 이들 비자 체류자 중 국내 근무 경력이 4년 이상이고, 숙련도 등 평가점수 가치가 일정 점수 이상인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점수제 비자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2년마다 이뤄지는 심사에서 체류 요건을 만족할 경우 사실상 초장기 체류도 가능해지는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제도가 정착기에 들어설 때면 장기체류 외국인 숙련공이 늘어나 한국인과의 일자리 갈등을 유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인이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기피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뿌리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숙련공으로 일하고 있다.
법무부는 일단 올해 최대 300명을 상대로 시범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점수제 비자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주조, 용접과 같은 뿌리산업이 숙련인력 구인난을 겪고 있는데 이번 제도 개선이 이들 산업의 인력 공급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p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