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에도 中·蘇 서로 "대북 영향력 없으니 너희가 나서라"
"마오쩌둥, 소련 하수인 역 거부했듯 시진핑도 미국 기대만큼 협력 안 한다"
북·중관계 연구 학자들 "중국에 공 넘기지 말고 미국이 직접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그들은 중국 말을 안 듣는다" "우리(소련)의 대북 지렛대도 나을 게 없다" "그들은 중국 말은 100% 안 듣지만, 당신네 말은 70% 안 듣지 않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핵 개발을 중단시킬 영향력이 자신들에겐 없다고 말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현 외교부 장관들이 나눈 대화가 아니다.
1956년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을 당시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의 최고위 보좌관 아나스타스 미코얀이 찾아가 북한 김일성의 정적인 연안파(친중파)와 친소파에 대한 김일성의 무자비한 숙청극을 중단시키는 문제를 놓고 서로 자신들은 영향력이 없다며 상대에게 해결책임을 떠넘기는 장면이다.
당시 중국과 소련의 대북 개입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이후 김일성은 도전자 없는 유일 지배 체제를 확립했다. 이 대화 기록은 미국의 우드로 윌슨 센터가 러시아 기록보관소에서 새로 비밀해제된 문건들을 이달 초 공개한 것에 들어 있다.
이 센터의 국제연구진으로 참여한 영국 카디프대의 세르게이 라드첸코 국제관계학 교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의 핵 문제 때문에 미국과 관계에서 놓인 처지가 마오쩌둥이 60년 전 처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라드첸코 교수가 지난 9일 윌슨 센터의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웹사이트에서 이 기록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미국이 중국에 대북 압박 강화를 요구하며 중국 기업과 은행들을 제재해도 중국이 미국의 기대만큼 협력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1956년엔 소련이 중국의 잠재적 경쟁국이었다면 오늘날엔 미국이 그러한데, 중국이 미국과 공동으로 자신의 피후견국인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자신의 지도력 포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산에 2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중국 속담처럼, 북한이라는 산은 중국이라는 호랑이의 영역"이라고 라드첸코 교수는 지적했다.
마오쩌둥은 당시 공산주의 진영에서 소련의 지도력에 도전하려던 마당에, 김일성을 굴복시키는 데 소련의 하수인 역할을 할 생각이 없었다.
마오쩌둥은 소련의 압박 때문에, 6·25 때 북한에 파병한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를 미코얀과 함께 북한에 보내긴했으나, 소련의 김일성 축출 음모에 대해선 반대했다. 마오쩌둥은 "그들(김일성 일파)을 쓰러뜨리지 않고 지원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고 라드첸코 교수는 소개했다.
마오쩌둥은 그때까지 북한에 주둔해 있던 중국군 44만 명을 1958년 모두 철수시키기도 했다. 북한 주둔 중국군에 대한 김일성의 의심과 두려움을 덜어주는 조치였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1960년대 초 중·소분쟁이 터진 후 김일성은 마오쩌둥에 대한 가장 큰 지원군 역할을 했다.
1956년의 마오쩌둥처럼 오늘날의 시진핑도 북한에 신물이 날 정도이지만 타국(미국)의 이익을 위해 채찍을 휘두를 생각은 없다고 라드첸코 교수는 거듭 주장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중국이 위대하다는 자의식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 무장한 북한이 평화를 위협하느냐 하는 문제가 갑자기 미국이 동아시아권에서 중국의 위상을 위협하느냐 하는 문제로 변해 버린다"고 그는 말했다.
미코얀이 "보호자 같은 어투"로 말하는 것에 대해 마오쩌둥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기하는 투였다고 불쾌해 했는데 "시진핑도 지금 트럼프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NKIDP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북한이 중국의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이 북한의 숨이 끊어지도록 올가미를 죄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보면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중국에 외주하는 방식 대신 미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입장들이다.
미첼 러너 오하이오주립대 한국학연구소장은 지난 5일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과거 공산권 나라들로부터 발굴되는 비밀문건들을 보면 "북한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정책 결정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에 저항"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기본적인 현실을 당시 공산권 지도자들은 알았으나 현재 미국 정책 수립자들은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러너 교수는 북한과 중국 간 관계가 한국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조차 양자의 이익을 위한 '정략결혼'으로 긴장과 다툼이 가득 찬 관계였지 "대부분의 미국인이 믿는 것처럼 진정한 이념적 동반자 관계는 아니었다"며 중국의 대북 영향력의 한계를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역할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더 이상 중국에 공을 던져 놓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결정적 행위자"라는 인식 하에 "필요하면 직접적인 군사행동"까지 포함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NKIDP 연구자들은 중국 내 일각에서 북한 포기론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실제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정권교체 등에 나서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중국의 문화혁명기인 1960년대 북한의 노동당은 동구권 공산당들과 접촉에서 마오쩌둥에 대해 "완전히 정신 나간 늙은 바보"라고 불렀고 중국의 홍군은 국경충돌에서 발생한 북한 측 사상자를 화물차로 북한에 돌려보내면서 "이게 너희 운명이 될 것이다, 이 꼬맹이 수정주의자들아"라고 낙서를 달기도 할 정도였으나 북·중 관계는 늘 회복했기 때문이다.
최근 거론되는 미국의 대중 추가 세컨더리 보이콧 전망에 대해 미국의 국제안보분석 전문업체인 스트랫포는 14일(현지시간) 대형 은행 등이 빠진 점을 들어 "중국에 실질적인 충격은 거의 주지 못할 것이며, 북한은 이전 제재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우회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의미에선 새로운 제재도 이전과 같이 상징적"이라고 덧붙였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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