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히잡 써야 하나"…이란서 뜨거운 논쟁
'개인적 공간' 해석 두고 찬반 분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승용차 안에서 히잡을 써야 하는지를 놓고 이란에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여성이 집 밖에서 머리에 히잡을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곳이다.
차 안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경찰은 차 안에서 히잡을 쓰지 않거나 쓰는 둥 마는 둥 하는 여성을 도로에서 적발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상습적으로 적발되면 차를 압류하기도 한다.
특히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이란의 더운 여름엔 차 안에서 히잡을 머리에 쓰지 않고 어깨에 두르는 여성이 많아 경찰의 단속이 강화된다.
그렇지만 최근 이란 여성들 사이에서 승용차 내부는 집안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확산하면서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란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데다 중도·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점도 이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차 안에서 히잡을 쓰는 문제를 두고 보수적 종교계는 강경하게 반대한다.
이란에서 히잡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했기 때문에 히잡을 쓰지 않는 풍조가 확산하면 이는 곧 국가의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신정일치 체제를 흔드는 일로 여기는 탓이다.
보수적 성직자 아야톨라 마커렘 시라지는 "도둑이 사람이 없는 차 안에 있는 물건을 훔치는 경우에는 차 안이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사람이 차에 탔다면 그렇지 않다"며 "차창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리에 지은 유리집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므로 히잡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적들(서방)은 히잡을 없애 이란에 해를 끼치려고 한다"며 "히잡을 지키는 것은 이런 적들의 계획을 막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이란 변호사 알리 나자피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개인적 공간'이란 그 안에서 범죄가 벌어진다는 확신이 없다면 들어갈 때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이라면서 다른 사람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차 안 역시 사적인 생활 공간이라고 해석했다.
개혁파의 야흐야 카말푸르 의원도 "승용차 안은 개인적인 공간으로, 경찰은 합법적인 근거 없이 이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 당국은 일단 차 안이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본다.
이달 초 이란 사법부 고위인사는 "차의 트렁크 같은 안 보이는 부분은 개인적 공간이지만 (운전석 같은) 보이는 부분은 개인적 공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에디 몬타제랄마흐디 이란 경찰청 대변인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다면 개인적 공간이 아니다"라며 "사회적 규범과 규칙(히잡 착용)은 차 안에서도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란 내 소셜네트워크에선 트렁크 안에서 껴안은 남녀의 그림을 올리거나 "내 차는 (트렁크가 없는) 해치백 모델인데 그렇다면 개인적 공간이 없겠네"라는 빈정대는 글이 게시됐다.
그만큼 엄격한 종교적 율법이 시행되는 이란에서도 히잡을 차 안에서까지 써야 한다는 당국의 기준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여성이 머리카락을 검은 천으로 완전히 가려야 하는 사우디와 달리 이란은 앞머리를 절반쯤 내놓는 완화된 형태(루싸리)가 용인되고 색깔도 다양하다.
대신 사우디는 외국인 여성에겐 종종 히잡 착용의 예외를 두기도 하지만 이란은 반드시 써야 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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