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서 시험대 오른 中 '내정불간섭' 원칙
"내정 개입으로 안정적 자원 확보하려는 계산"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1950년대 이래 중국 외교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내정 불간섭' 원칙이 중국에서 수천㎞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장기간 대규모 투자로 확보한 아프리카에서의 경제적 이권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간 유지한 내정 불간섭 원칙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과거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타국에 대한 정치 개입을 자제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호 내정 불간섭 원칙을 방패 삼아 타국의 중국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내 안정과 경제 성장에 힘을 쏟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고 해외 자원 확보 필요성이 커지면서 내정 불간섭 원칙이 흔들리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투자로 확보한 경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안보 분야에 대한 입김을 키우고 있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중에서 가장 많은 2천여 명의 평화유지군을 남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 등 아프리카에 파견하고 있다.
특히 750명이 주둔 중인 남수단에서는 지난해 중국인 평화유지군 2명이 반군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해 중국 누리꾼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중국은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외 해군기지를 구축하는 등 해외에서의 '군사굴기'(堀起·우뚝 섬)도 본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정 불간섭 원칙에 벗어나는 중국의 행보 뒤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불안정한 내정에 개입해 에너지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야심이 숨어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지난 2002년 27억 달러(3조900억원)에 불과했던 중국의 해외 투자가 작년 1천700억 달러(195조원)로 급증한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이 이러한 경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타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가 중국이 이례적으로 내전 개입을 선언했던 남수단 사태다.
지난 1995년부터 수단에 투자해온 중국은 유전개발은 물론 정유공장 설립, 송유관 건설 등 수단의 석유사업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1983년부터 이어진 내전이 원유 개발에 걸림돌로 작용하자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무시한 채 남·북 수단 간 휴전과 남수단의 분리독립 등을 나서서 추진했다.
이런 중국의 노력으로 수단의 석유자원이 대부분 몰려있는 남수단이 2011년 독립에 성공하자 중국은 2014년 유엔 안보리 회원국들을 설득해 남수단의 평화유지군 주둔 연장을 주도하는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중국은 수단과 남수단에서 나오는 원유의 8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 있는 싱크탱크의 창립자인 피터 아작은 FT에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이 아프리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자원 문제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며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남수단에서 이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제분쟁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인터내셔널크라이시스그룹의 얀메이 시에 연구원도 "남수단 사태에 대한 중국의 개입 정도는 몇 년 전부터 상상을 넘어섰다"며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이에 대한 해석범위를 넓혀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바탕으로 국제정치적 위상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국 서섹스 대학의 징구 연구원은 아프리카가 중국의 군사개입과 외교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며 "중국은 책임감 있는 세계 강국으로서의 모습을 아프리카에서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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