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햄버거 패티 원조는 몽골군 말 안장 밑에서 숙성된 생고기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맥도널드가 햄버거에 넣는 패티를 덜 익혀 팔아 어린이 건강을 해쳤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일명 햄버거 병이라는 용혈성 요독증후군(HUS)에 걸려 콩팥 기능 90%를 상실한 4살 소녀 A양의 어머니 최 모 씨가 최근 한국맥도날드를 검찰에 고소했다.
A양은 햄버거 한 개를 먹은 다음 복통을 앓고, 피 섞인 설사까지 해 병원으로 실려 가 HUS 진단을 받았다.
최 씨는 면역력이 약한 A양이 덜 익은 패티를 먹은 탓에 HUS에 걸렸다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엄벌을 검찰에 요구했다.
맥도날드 측은 식품안전 절차에 맞춰 기계에서 자동으로 조리되므로 문제 여지가 없다고 반박한다.
HUS가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은 사람이 집단으로 발병한 1982년이다.
1993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햄버거를 먹은 732명이 HUS에 걸려 4명이 죽고, 178명이 신장과 뇌 손상 등을 입었다.
피해자는 패스트푸드 업체 매장 73곳에서 햄버거를 사 먹은 10세 미만 어린이가 대부분이었다.
이때부터 HUS에 햄버거 병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세균에 감염된 고기로 만든 패티를 충분히 익히지 않은 채 햄버거 빵 사이에 끼워 넣은 탓에 HUS가 발병한 것으로 피해자들은 의심한다.
다진 쇠고기로 만드는 패티는 1850년대 독일 함부르크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에 전파했다고 한다.
이 요리가 함부르크에서 왔다 하여 미국에서는 햄버그스테이크(Hamburg steak)로 불렸다.
이를 발전시킨 식품이 햄버거인데 탄생 과정을 놓고는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먼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때 구내식당 주방장이 둥근 빵 사이에 패티를 끼워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판매한 것이 햄버거 원조라는 주장이 있다.
1900년 코네티컷 주 레스토랑에서 덴마크 출신 이민자 루이스 라센이 개발해서 판매한 것이 시초라는 반론도 나온다.
1885년 위스콘신 주 시모어 박람회에서 두 조각 식빵으로 동그랑땡을 싸서 판 것을 계기로 햄버거가 생겼다는 설도 있다.
빵과 채소 등으로 구성되는 햄버거 시초를 아직 잘 모르지만, 패티 원조가 햄버그스테이크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햄버그스테이크의 뿌리는 세계 역사상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몽골군의 전투식량이다.
칭기즈칸(1162?~1227년) 영토는 그리스 알렉산더(BC356~BC323년)와 프랑스 나폴레옹(1769~1821년), 독일 히틀러(1889~1945년) 등 3명이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한때 거침없이 영토를 확대하는 듯했으나 러시아 원정에서 참패하고서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모두 단기 승리를 목표로 총력전을 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보급선이 끊기고 겨울이 닥쳐 막대한 병력을 잃고 퇴각했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진군해 약 20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가 한순간에 수렁에 빠진 것도 보급로 때문이다.
조선 의병이 부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긴 육상 보급로를 수시로 공격한 데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함대가 해로를 봉쇄한 탓에 생필품과 전쟁물자가 모자라 북상을 중단한 것이다.
13세기 몽골군은 사람과 마차 대신 말을 이용한 보급 작전을 펴 중국,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유럽 일대를 단기간에 정복한다.
모든 기병이 전투식량 등을 실은 말을 5~6마리씩 이끌고 달림으로써 신출귀몰한 기동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루 이동 거리는 최대 200Km에 달했다.
전투식량은 육포와 생고기 절임이었다.
육포는 겨울에 소나 양, 말 등을 잡아서 살코기만 떼어내 줄에 매달아 바싹 말린 것으로 완전히 건조되면 무게와 부피가 많이 줄어든다.
육포를 절구에 넣어 갈거나 망치나 돌멩이로 두들겨 가루로 만든 것을 보르츠라고 했다.
보르츠는 깨끗하게 씻은 가축 방광이나 위장으로 포장해 말에 싣고 다니다가 끼니마다 조금씩 꺼내 물에 불려 먹는다.
부피가 작고 가벼운 보르츠는 운반이 쉽고 2~3년 동안 실온에서 보관해도 변질하지 않으므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최상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전쟁 중에 불을 피워 조리할 필요가 없어 적진 깊숙이 은밀하게 접근해 기습공격을 하는 데도 유리하다.
생고기 절임도 몽골군이 즐겨 먹었다.
양고기나 쇠고기를 잘게 썰거나 덩어리로 만들어 말 안장 밑에 넣고 다니면 2~3일 후에 육질이 연해진다.
말이 뛸 때마다 안장 무게 등으로 고기가 다져져 부드러워지고 말 체온으로 숙성까지 돼 날로 먹을 수 있게 된다.
고기에 소금이나 향신료 등을 첨가해 맛을 내기도 했다.
헝가리까지 진출한 몽골군의 이런 요리를 유럽인은 타타르 스테이크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 깊은 곳을 상징하는 타르타로스에서 파생된 타타르 사람은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몽골군을 지칭했다.
타타르 스테이크는 함부르크 상인에 의해 독일 등지로 전파돼 유럽 상류층의 별미 음식이 된다.
다만, 잘게 다진 몽골식 생고기가 아니라 둥근 모양의 가장자리를 구워 만든 요리다.
함부르크는 중세에 발트 해 연안 등을 중심으로 발전한 한자동맹의 핵심 교역장소로 2017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함부르크 스테이크는 미국으로 건너가 햄버거로 발전한다.
번스(둥근 빵)에 고기 간 것을 끼운 햄버거는 먹기 편리하고 맛도 좋아 인기를 끈다.
햄버거가 미국 대표 식품으로 발전한 데는 1955년 창업한 맥도날드 역할이 컸다.
이후 맥도날드는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 점포를 늘려 대성공을 거둔다.
맥도널드는 현재 하루 고객이 약 5천4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체인음식점으로 성장했다.
햄버거와 치킨류, 아침 메뉴, 디저트류를 팔다가 최근에는 웰빙 트렌드를 반영해 샐러드와 과일 제품도 제공한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가게라는 단순한 역할을 넘어 분쟁예방 기능까지 한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999년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골든 아치 분쟁예방론'을 제기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 정도이면 의식이나 생활 수준이 국제화한 나라여서 이념과 민족 문제를 두고 무모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골든 아치는 맥도널드를 상징하는 황금색 M자로 세계 모든 점포 앞에 세워져 있거나 간판에 새겨져 있다.
골든 아치 이론은 책이 발간된 지 두 달 만에 맥도날드가 성업한 유고슬라비아 분쟁지역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포격함으로써 빛이 바랜다.
각국 맥도날드 체인점에서 파는 햄버거 가격을 기준으로 한 '빅맥 지수'는 국가별 물가 수준을 비교하는 데 활용된다.
한국에는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3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점포를 개설한 것이 맥도날드 진출 1호다.
맥도날드는 롯데리아 등 국내외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들과 경쟁하며 꾸준히 성장했으나 시련도 적잖았다.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압사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문을 계기로 반미감정이 고조돼 한동안 매출이 급감했다.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시민단체나 학부모 공격도 있었다.
한 시민단체는 패스트푸드 때문에 비만율이 높아져 심장병과 당뇨병, 각종 암이 발생했다며 맥도날드 철수를 요구했다.
대규모 광고와 미끼상품으로 아이들을 유혹하고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비난도 했다.
미국에서는 '슈퍼 사이즈 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돼 비만과 성인병 주범으로 패스트푸드를 고발했다.
영화감독이 30일간 맥도날드 식품만 먹으면서 나타나는 신체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햄버거가 단순히 영양 불균형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미국 등에서는 소송전이 벌어졌다.
5세 이하 아이가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햄버거 패티를 먹으면 콩팥을 망가뜨리는 HUS에 걸릴 수 있다는 게 피해자 측 주장이다.
하지만 패티가 발병 원인이라는 결론은 아직 법원에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균이나 이질균, 캄필로박터균 등에 감염돼 생기는 HUS는 성인에게 큰 피해가 없지만, 유아는 다르다.
급성신부전증을 앓다가 5~10%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
덜 익은 육류뿐 아니라 유제품이나 채소 등도 감염원이 될 수 있다.
A양은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HUS에 걸렸다고 하지만, 다른 음식물이 원인일 수도 있으므로 보건당국은 서둘러 역학조사부터 해야 한다.
검찰은 '안방 세월호'에 비유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거울삼아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이후 무려 18년간 아무 규제 없이 팔려나가 1천195명이 숨졌으나 피해자 분류조차 못 해 검찰 수사가 무려 4년이나 미뤄졌다.
부정식품을 없애려면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온 국민이 감시하고 신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국 어디서나 국번 없이 1399만 누르면 부정·불량식품을 신고할 수 있다. 식품안전정보원은 신고 내용을 따져 보상금을 최대 1천만 원까지 지급한다.
햄버거가 HUS 발병 원인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아직 없는 만큼 맥도날드를 무작정 비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악덕 식품업자를 엄단해야 마땅하지만 단지 의혹만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면 광우병 괴담 망령은 언제든지 되살아난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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