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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에 무릎 꿇은 中 인권해방의 기수 류샤오보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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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에 무릎 꿇은 中 인권해방의 기수 류샤오보는 누구?

(선양=연합뉴스) 홍창진 특파원 = 13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간암치료를 받던 중 숨진 류샤오보(劉曉波·61)는 중국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인권해방의 기수로 잘 알려졌다.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했으나, 감옥에서 있었던 탓에 끝내 시상하지 못했던 걸로 유명하다.

1955년 12월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지식청년(知靑)이라는 이유로 하방(下放·지식인을 노동 현장으로 보냄)돼 건축공사 근로자로 일해야 했고, 1977년에야 지린대학 중문과에 입학해 1982년 졸업했다.

이어 베이징(北京)사범대학에서 석·박사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그 이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하와이대학 등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특강하기도 했다.

그의 운명은 1989년 6월4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 이전의 학력과 경력으로 볼 때 중국에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중국의 참혹한 인권에 눈감지 않았다.

톈안먼 사태 발생 당시 미 컬럼비아대학에 머물던 류샤오보는 곧장 중국으로 돌아가 광장시위 단식농성에 가담했고, 그 이후 민주개혁 요구에 동참했다. 이후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형극의 길을 걸었다.

텐안먼 사태 이틀 후인 6월 6일 중국 공안당국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그는 강단에서 쫓겨나는 공직박탈 조치를 당했다. 공안의 집중 감시 대상이 돼 19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여 감금됐다가 그 다음해 10월 '사회질서교란죄'라는 명목으로 법원에서 3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이같은 고난 속에서도 류샤오보는 작가활동을 하면서 중국 당국의 반인권 처사를 비판하고 중국인의 인권보호활동에 투신했다.

이로인해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의 중점 감시대상이 돼 톈안먼 민주화 운동 기념일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되면 감금되는 가하면 외출금지는 물론 전화까지 차단되는 등 외부와 격리돼야 했다.

그는 특히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08헌장'을 발표해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 등 중국 당국에 광범위한 민주개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2009년 12월 국가 전복선동죄를 적용받아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그러나 류샤오보의 이같은 민주화활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당시 그가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길고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였다"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류샤오보는 노벨상 시상을 할 수 없었고, 노벨위원회 측은 대신 그가 불참한 의자에 메달을 걸어주는 이벤트를 만들기도 했다.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노르웨이와 중국의 수년에 걸친 외교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는 '08헌장'을 발표하기 이틀 전 2008년 12월 전격 체포됐고 2009년 12월 베이징 중급인민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해왔다. 지난 5월말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서야 가석방돼 선양 소재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한달여 동안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realis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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