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력 70년…축구 할아버지들이 뭉쳤다
80대 원로 18명, 축구 동호회 '성축회' 발족
"우습게 보지 마세요.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이슬비가 내리던 7일 낮 서울 효창운동장. 주름살이 깊이 팰 정도로 웃음기를 머금은 노인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모임에 연락관 역할을 한 오인복(80·전 국가대표 골키퍼)씨는 한 사람씩 손을 잡고 안부를 물으며 반겼다.
"아직도 잘 살아있네?"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들어온 한 원로는 농담 섞인 안부 인사를 하며 박장대소했다.
약속 시간에 약 5분 정도 늦게 도착한 박종환(79) 전 국가대표 축구감독이 등장하자 회의실은 다소 시끄러워졌다.
한 원로는 박 감독을 향해 "종환아 너는 국가대표 감독까지 했으니 가운데에 앉아라"라며 웃었다.
이날 모임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 원로들의 축구 동호회 발족식이었다.
18명의 축구 원로들은 건강 증진과 화합 도모를 위해 준비 기간을 거쳐 이 모임을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노인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이들이 걸어온 길은 누구보다 화려했다.
김정석 원로는 대표팀 선수 출신으로 1966년과 1968년 아시아 올스타에 뽑혔고, 허윤정 원로는 196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허윤정 원로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만든 최고 엘리트 축구단 '양지팀' 공격수로도 활약했다.
이 밖에 국가대표와 청소년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유현철(81) 원로,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에서 수문장으로 활약한 오인복 원로 등 '최소' 국가대표급 경력을 갖춘 동시대 최고의 축구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치 군대로 치면 장군 출신들의 모임과 같은데, 이들은 별성(星)자를 따 성축회(가칭)라고 팀 명을 정하기로 했다.
성축회는 내년에 한국 나이로 80세가 되는 1939년생부터 회원을 받기로 하는 등 기준을 세웠다.
국내에 80대 노인들로 이뤄진 축구 동호회가 드물어 '스파링 상대'를 찾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오자 박종환 전 감독은 "60~70대 실버축구단과 맞붙으면 된다"라고 응수했다.
박 전 감독은 "그래도 우리 자존심이 있지… 젊은 친구들과 맞붙어도 충분히 해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축회 감독을 뽑는 과정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이은성(81) 전 대학축구연맹 부회장이 박종환 전 감독을 추천했는데, 박 감독은 "나 말고도 할 사람이 차고 넘친다"라며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박 전 감독은 "감독직을 맡지 않으면 성축회의 판을 시작부터 깨는 것"이라는 이은성 원로의 주장에 못 이겨 수락했다.
원로들은 이 모임의 성격을 단순히 축구 동호회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계에 조언할 수 있는 모임으로 발전시키기로 입을 모았다.
현재 축구대표팀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오인복 원로는 "신태용 감독이 이름값에 구애받지 않고 현재 최고의 컨디션을 갖춘 선수를 뽑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정석 원로는 "이란전부터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계획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 이란전에서 패하면 분위기가 심각해진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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