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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집 바로 뒤 산비탈, 80대 노인 손만 대도 돌이 '후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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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집 바로 뒤 산비탈, 80대 노인 손만 대도 돌이 '후두둑'

6년 전 산사태 춘천 신북읍 천전리 '여전히 위험'…"대책 좀 만들어줘"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어르신들이 비만 오면 토사가 쏟아져 내릴까 봐 무서워서 잠을 못 자…"

이달 3일 오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6년 전인 2011년 7월 13명이 숨지는 등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곳 주변 마을을 지나가자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할 얘기가 있다"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저기 저 땅 보이지? 저기가 원래 개인 땅인데, 건설업자한테 팔아서는 저 예쁜 소나무들을 다 베고 저렇게 해놨어. 기초공사도 얼마나 엉터리로 해놨는지 비만 내리면 저 위에서부터 모래가 말도 못하게 내려와."


주민 신경숙(65·여)씨는 숨이 넘어갈 듯 하소연하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말 좀 해봐요"라며 박운규(72) 이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박 이장은 "2년 전만 해도 토사라곤 하나도 내려오지 않았던 곳"이라며 도로 한쪽에 쌓아놓은 흙더미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비에 젖어 질척질척해진 흙더미 위에는 삽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흙더미가 쏟아져 내린 길을 따라가자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벌거숭이 산이 나왔다. 그 옆으로는 언제부터 비었는지 모를 폐가가 한 채 있었다.


이를 철거하지 않고 공사한 탓인지 폐가 주변으로 지붕보다 높은 흙더미가 쌓였다.

집 안으로는 이미 진흙이 쌓일 만큼 쌓였고 잡초들이 구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밀리면 그냥 가는 거지 뭐."

앞으로 최대 150㎜가 넘는 비가 더 내린다는 소식에 대비책을 묻자 박 이장의 대답은 짧고 명료했다.

그는 "올해는 가물어서 이 정도지, 작년에는 도로에 물이 넘쳐 흘렀다"며 "지금처럼 흙에 물이 잔뜩 밴 상태에서 집중호우가 또 쏟아지면 산사태 위험이 정말 크다"고 걱정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속절없이 깎인 것은 3년 전이다.

본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었으나 단독주택을 짓는다며 산을 깎아내고 보강토블록을 쌓아놨다.


문제는 이때부터 비만 오면 마을에 홍수가 나다시피 물이 흘러넘치고 토사가 떠내려온다는 것이다.

도로변은 임시방편으로 시멘트 블록과 나무, 돌멩이 등을 쌓아놨을 뿐이다.

이를 넘어버리면 바로 아랫마을 민가다. 주민들은 산사태 위험을 등에 맞댄 채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권재순(88) 할머니네 집은 그중에서도 '위험수위'가 가장 높다.

집 뒤편으로 불과 2m가량 거리를 두고 산비탈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토사가 얼마나 흘러내렸는지 새카만 나무뿌리가 길게 드러날 정도였다.

단단할 줄 알았던 비탈은 88세 노인의 힘 없는 손길에도 서벅돌처럼 부스러졌다.


"치우면 또 흘러내리고, 치우면 또 흘러내려."

권 할머니네 집은 6년 전 산사태 났을 때 토사가 흘러내려 옹벽이 설치됐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절반만 놓였다고 한다.

도랑으로 빠져나가야 할 물은 벽을 넘기 일쑤다.

권 할머니는 "또 허물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여기도 어떻게 벽 좀 만들어주면 안 되느냐"고 했다.

신경숙씨 부부는 마치 사기를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울 송파구에 살던 신씨 부부는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3년 전 교통과 자연환경이 좋다는 이곳으로 이사 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무가 있던 곳은 벌거숭이가 됐다.

집 주변 조그마한 밭에서 고추도 따고 감자도 캐는 소박한 삶은 여름만 되면 산산조각이 났다.

보강토블록 틈새도 잘 다져지지 않았는지 토사가 흘러내렸다.

신씨는 "전경도 마음에 들고 개발제한구역 푯말을 보고는 안심이 돼 이사 왔는데, 장마철만 되면 물난리와 산사태가 걱정돼 어르신들이 잠을 못 주무신다"고 말했다.


주변의 다른 집은 아예 올해 밭농사를 포기했다.

금방 지어질 것 같았던 단독주택은 기초공사만 끝낸 채 2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주민들은 행여나 또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이 흙에 묻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박 이장은 "허가를 받고 공사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업자가 계속 바뀌는지 진전이 없다"며 "공사를 빨리 끝내든지, 산사태에 대비해 조치를 해주든지 시가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안전처는 3일 폭우가 쏟아진 강원 홍천 지역에 산사태 경보를 발령하고, 강원·경기·경북 등 비가 많이 내린 4곳에 대해서도 산사태 주의보를 내렸다.

산림청도 지난달 말 현재 전국 2만1천406곳을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 주민 대피체계를 구축하고 산사태 위험이 큰 기간(5월 15일∼10월 15일) 산사태 예방지원본부를 운영한다.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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