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1인1표 민주주의가 가장 덜 나쁜 정치체제일까"
대니얼 벨 중국 칭화대 교수 신간 '차이나 모델'
미국과 중국의 국가지도자 선출 과정을 비교하는 동영상[https://youtu.be/M734o_17H_A]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그동안의 모든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통치 체제"라고 말했다. 처칠의 말은 민주주의의 우수성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그러나 캐나다 출신의 정치철학자 대니얼 A.벨 중국 칭화(淸華)대 교수는 신간 '차이나 모델-중국의 정치 지도자는 왜 유능한가'(서해문집)에서 '1인 1표제'로 대표되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가장 좋은 제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현능주의'에 관심을 돌리자고 제안한다.
'실력주의', '능력주의'로 번역되기도 하는 '현능주의'(賢能主義.meritocracy)에서는 정치권력을 선거로 뽑힌 사람이 아니라 능력과 덕성을 갖춘 사람에게 부여한다. 지도자는 시험제도를 통해 선발되고 수십 년에 걸친 고과 제도를 통해 승진한다.
저자는 현능주의를 구현한 대표적 국가로 중국을 들면서 중국의 정치체제를 옹호한다. 중국에서는 국가주석을 선거로 뽑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진핑 현 주석은 지방 말단 관리에서 시작해 시(市), 성(省), 부(部)급 관리를 거쳐 중앙위원회, 정치국, 정치국 상무위원회까지 바닥에서부터 경험을 쌓고 숱한 경쟁을 거친 뒤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고위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책은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다수가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소수파를 억압하고 나쁜 정책을 채택할 수 있다. 경제력을 가진 소수집단이 정치에 개입해 자신의 이익에 맞는 정책을 관철할 수도 있다. 미래 세대나 외국인처럼 정책에 영향을 받지만,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의 입장은 투표권을 가진 집단의 입장에 밀릴 수 있다. 선거는 사회 갈등을 격화시키기도 한다.
현능주의 역시 단점이 있다. 우월한 능력을 근거로 선발된 통치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정치적 위계질서가 고착돼 사회 유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체제의 정당성을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저자가 현능주의 모델로 보는 중국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독립적 감찰기구 운용, 공무원 급여 수준 향상, 도덕 교육 강화, 집권당을 다양한 집단에 개방, 새로운 종류의 능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 선발을 쉽게 하는 노력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능주의와 민주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민주적 현능주의'를 제시하며 '차이나 모델'을 이야기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현능주의를,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민주주의를 결합한 구조다. 책은 이미 중국에서는 촌민위원회 선거 등을 통해 일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맨 꼭대기 지도자는 현능주의로 선출하되 중간층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내용은 2015년 영문판 출간 이후 많은 학자로부터 '중국 정부의 변호인'이라거나' 중국의 현실을 잘 모르고 쓴 글', '민주주의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것'이라는 등 비판을 받으며 논쟁 대상이 됐다. 저자는 이런 비판들이 자유민주주의만이 절대적 정당성을 지닌 정치적 선출방법이라는 맹목적 믿음과 중국 정치체제에서는 어떤 좋은 것도 나올 수가 없다는 독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한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현능주의 어느 한쪽이 반드시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국가적 상황에 따라 공존하자는 '1천하 2체제'를 주장하는 것으로 책을 끝낸다. 중국이 서방 국가들의 비판을 받을 때 내세우는 '중국 특색 민주주의'와도 비슷한 주장이다.
책을 번역한 역사학자 김기협은 "민주주의 아닌 과거의 모든 정치제도를 '봉건적'이니 '전제적'이니 깔보던 근대인의 오만을 반성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여러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선거민주주의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원리를 밑바닥부터 뒤집어보는 책"이라면서 "(선거민주주의) 개선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선거민주주의 자체의 맹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432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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