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봉준호 "애완견과 삼겹살, 불편하게 합쳐놓은 영화"
"공장식 축산 시스템 문제 삼고 싶었다"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동물은 친구나 가족이기도 하고 음식이기도 하죠. 집에서 애완견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잖아요. 동물을 인간 기준으로 나눠놨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두 가지를 불편하게 합쳐놨습니다. 사실 그들이 하나의 생명체, 존재라는 것을 재밌고 우스꽝스러운 소동 같은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9일 개봉하는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27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먹는 것은 너무 중요하고 일상적인 문제인데 의외로 우리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잘 모른다"며 "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면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데뷔 이래 이렇게 작은 규모로 개봉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 옥자는 단성사에서만 100만 명을 불러모았던 '서편제'처럼 개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영화로서는 가장 많은 스크린 수라는 데에 만족한다.
-- 영화 외적인 논란으로 마음고생도 많았을 텐데.
▲ 한 달 반 동안 인터뷰만 100차례 정도 했는데, 스토리가 아니라 배급이나 매체, 기술적인 부분 등을 이야기하니까 오히려 좋은 면도 있다. 화제가 많이 되지만 영화 스토리가 새나가는 것은 덜 하기 때문이다.
-- 넷플릭스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국경이 희미해지는데 그런 유통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에서는 서버 우회경로만 잘 찾으면 국경을 붕괴시킬 수 있는데 그런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이런 서비스가 독립 영화나 다큐멘터리 하시는 분에게 좋은 창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같이 영화적 욕심이 많은 창작자에게는 큰 스크린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 넷플릭스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창작의 자유를 꼽았는데.
▲ '옥자'는 예산 규모상 아시아나 유럽 회사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미국 회사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미국 회사들은 웬만해서는 감독에게 전권을 안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유일하게 전권을 줬다. 극장 개봉에 아쉬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흘러온 것이다. 화두를 던지거나 논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
--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영화는 어떤 점에서 보고 싶은 영화였는지.
▲ 동물에 관한 얘기를 찍고 싶었다. 동물은 친구나 가족이기도 하고 음식이기도 하다. 집에서 애완견이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한다. 편의 때문에 그걸 분리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두 가지를 불편하게 합쳐놨다. 동물을 인간 기준으로 나눠놨는데 사실 그들이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재밌고 우스꽝스러운 소동 같은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 '설국열차'에서도 그렇고 계속 먹거리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데.
▲ 먹는 것은 너무 중요하고 일상적인 문제인데 의외로 우리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잘 모른다. 촬영 전 콜로라도 도살장에 가서 동물을 분해하는 과정을 보고 놀랐다. 그걸 관객들에게도 압축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육식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우리가 알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공장식 생산 시스템은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줘서 독소를 누적시키기도 한다. 한 일본영화 속 대사 중에 '고기를 잡아먹는 것은 동물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을 이어받는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런 자연의 흐름 속에 있는 육식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 달리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요소가 많이 줄어들고 이야기도 단순해졌다는 평이 있다.
▲ 연극도 대극장 연극보다 소극장 연극에 디테일이 많듯 워낙 무대나 스케일이 넓어지다 보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무대나 넓어지다 보니 국내 관객은 그냥 지나치지만 미국 관객이 킥킥거릴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분산되는 측면이 있다.
-- 슈퍼돼지인 옥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도 화제가 됐는데.
▲ 돼지 목소리를 맡은 이정은 씨는 전작 '마더'에서 같이 일한 배우다. 극 중 '옥자'의 감정이 섞이거나 톤을 조절해야 하는 부분은 이정은 씨의 목소리를 쓰고 동물로서의 목소리는 실제 돼지 목소리를 변조시켜서 썼다.
-- 스크린과 작은 화면에서 다 봤을 텐데 차이가 있나.
▲ 당연히 큰 화면이 좋다. 4K 화질로 볼 수 있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고 집에서 보더라도 대형TV나 프로젝터를 권하고 싶다. 극장의 큰 스크린을 기준으로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제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는 안 봤으면 좋겠다. 이미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됐기 때문에 계속 지구 상 어디선가 계속 큰 화면으로 상영되고 있을 것이다.
-- 최근 대규모 예산의 영화를 계속 찍었는데 작은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없는지.
▲ 두 개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둘 다 작은 영화다. 배우 송강호와 함께할 '기생충'은 전작 '마더' 정도 규모의 영화다. 투자, 제작, 스태프, 배우 모두 한국인이고 100% 한국어 영화다. 그다음 제작할 영화는 100% 영어 영화인데 이것도 작은 규모의 영화다.
- '옥자' 개봉 이후 어떤 순간이 가장 짜릿할 것으로 기대되는지.
▲ '옥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시골의 한 50대 여자 관객이 잠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간이 남아서 '옥자'를 봤는데 "재미있었다. 이상한 동물이 나오는데 정말 귀엽더라"하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분이 옥자가 실제로 있는 동물인 줄 알고 '저게 어느 나라 종이여?'라고 묻는다면 최상의 찬사가 될 것 같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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