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세계 톱랭커 3인방 '보이콧'으로 본 中체육계 권력투쟁
세계 1∼3위 감독경질에 반기 시합기권…구파·신파 알력 작용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남자탁구 세계랭킹 1∼3위 중국 선수들이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 도중 갑자기 '보이콧'을 선언한 일로 중국 체육계의 권력투쟁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 선수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갑자기 경질한데 반발하고 시합을 포기한 것이 중국 체육계에 뿌리깊이 자리잡혀 있는 양대 세력간 충돌로 관료주의적 체육행정에 대한 반기라는 것이다.
지난 23일밤 중국 청두(成都)에서 개최된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중국 오픈에서 개인단식 16강을 앞두고 세계랭킹 1위 마룽(馬龍)과 2위 판전동(樊振東), 3위 쉬신(許昕)이 시합에 나타나지 않았다.
직전까지 중국 탁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류궈량(劉國梁) 감독이 경질되자 "그가 그립다"며 시합을 기권한 이들 선수를 두고 중국탁구협회는 비애국적 행동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세계 복식 탁구 챔피언 출신의 류 감독은 시합을 하루 앞둔 22일 돌연 중국탁구협회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겉으로는 영전 같지만 실제로는 국가대표팀에서 손을 떼게 한 경질이었다.
이를 두고 중국 국가체육총국 내부의 뿌리 깊은 알력과 권력 및 노선 투쟁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 체육총국에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지도자 훈련을 거쳐 총국에 올라온 일단의 세력과 고학력에 행정경험을 갖추고 중국 공산당에 의해 '낙하산'으로 내려운 비선수 출신 세력들이 오랫동안 맞서 있었다.
이들 상이한 배경의 인사들이 함께 업무를 할 때 발전관리 체계에 대한 생각이 크게 차이가 날 때가 많고 이권에서도 큰 충돌이 일어날 때도 적지 않다는게 중화권의 한 스포츠전문가의 진단이다.
프랑스 RFI 중문판은 "거우중원(苟仲文) 국장을 수뇌로 한 체육총국의 신파가 차이전화(蔡振華) 부국장을 대표로 한 선수 출신의 구파를 축출하기 위한 정치투쟁일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체육계 내부에서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이길 수 있는 곳은 체육총국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류 감독 좌천성 인사의 진정한 타깃이 중국 국가체육총국 유일의 중국 공산당 중앙후보위원인 차이 부국장이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1990년대 현역 시절 올림픽을 제패했던 탁구선수 출신의 차이 부국장은 현재 중국탁구협회 회장도 겸하고 있다.
류 감독은 지난달 말 싱가포르 카지노에서 수억원의 도박 빚 때문에 낙마한 궁링후이(孔令輝) 전 여자 탁구대표팀 감독과 함께 차이 부국장의 측근으로 여겨졌다.
특히 중국의 지도부가 개편되는 올 가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대)를 앞두고 체육계에 할당된 중앙위원 티켓 한장을 두고 내분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우 국장이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10년 가까이 중앙후보위원을 지낸 차이 부국장을 끌어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류궈량, 궁링후이 감독이 1차적인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전자공업부 출신의 거우 국장은 지난해 10월 부임 이래 체육계 개혁에 나설 계획을 밝히며 먼저 부정부패 일소와 함께 엘리트 체육보다는 사회 체육을 중시하는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거우 국장의 이 같은 정책방향은 선수들이 치열한 훈련을 거쳐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그 명성으로 찬조, 광고 등 경제적 이익을 누려오던 기존 중국의 체육계 이권구조에 직격탄을 가했다.
독일의 소리(DW) 중문판은 "거우 국장이 체육계 내부의 지탄의 대상이 돼 왔다"면서 "이번 사태에 일반 네티즌들도 보편적으로 선수들 편에서 이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체육총국이 "이번 사태는 선수들이 프로정신을 위배하고 상대 선수 및 관중들을 무시한 것"이라며 비애국적 행위라고 비판하자 네티즌들은 이들이 기권한 것은 개인단식 뿐이고 국가순위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고 이들을 변호했다.
네티즌들은 또 그간의 류 감독 공적을 거론하며 그의 교체가 대표팀 수준을 저하하고 단합을 해칠 것이라면서 이번 선수들의 관료체제 항거가 '기개에 넘친 의거'라고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중앙(CC)TV의 스포츠채널은 이번 사태 보도에 대한 댓글 기능을 없애기도 했다. 중국 체육계의 관료주의적 행태와 낙하산 인사가 체육행정을 이끄는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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