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자산은 인테사 산파올로가, 부실자산은 정부가 인수할 듯"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동성 위기로 도산 위기에 몰린 이탈리아 부실 은행 2곳이 곧 청산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3일 베네토 방카, 방카 포폴라레 디 빈첸차 등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은행 2곳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구제 방안을 예비 승인했다.
ECB는 성명을 통해 "두 은행에 자금 확충을 위한 시간을 줬으나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두 은행은 부실은행 구제를 위해 창설된 이탈리아의 민간 기금 아틀란테로부터 지난 해 35억 유로를 지원받는 등 회생에 안간힘을 썼으나 막대한 부실채권(NPL)과 경쟁력 없는 사업 모델 등으로 현재 64억 유로 규모의 유동성 부족에 처하며 결국 청산으로 내몰렸다.
이탈리아 정부는 ECB의 성명이 나온 뒤 "주말에 회의를 소집해 두 은행 예금자들과 주요 채권자들을 보호하고, 창구 영업이 계속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이탈리아 언론은 이와 관련, 이탈리아 정부가 비상 법령을 채택해 두 부실 은행의 자산을 우량 자산과 부실 자산으로 분류해 우량 자산은 이탈리아 제2의 은행인 인테사 산파올로에 매각하고, 부실채권(NPL) 등의 불량 자산과 구조조정 비용 등은 국고로 떠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테사 산파올로는 이미 지난 22일 베네토 방카와 방카 포폴라레 디 빈첸차의 NPL과 후순위 채권을 제외한 자산과 부채 일부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테사 산파올로는 두 은행의 영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상징적인 금액인 1유로에 NPL 등 부실 자산을 제외한 건전 자산만 맡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부실 자산까지 떠안을 경우 자본 건전성과 주주배당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탈리아 정부의 두 은행 구제 방안이 실현될 경우 두 은행의 주주나 후순위 채권자의 피해는 불가피하지만, 선순위 채권자나 예금자는 피해를 입지 않게 된다.
두 은행의 위험 부채가 200억 유로를 웃도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쏟아부어야 할 돈은 적게는 80억 유로, 많으면 120억 유로에 달할 수 있다고 이탈리아 언론은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부실 은행 구제에 회원국이 국고를 투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나,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큼 비중이 높지 않은 은행에 대해서는 국가 주도의 청산 절차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이탈리아는 이런 예외 조항을 활용해 두 부실은행의 처리에 세금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산 위기 은행들의 처리에 골머리를 앓아온 이탈리아 정부는 세금으로 부실은행의 부담을 떠안는다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금자나 선순위 채권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빚어질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하며 이 같은 청산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EU 내부에서는 이탈리아가 원칙을 무시하도록 허용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아울러 이탈리아 야당에서도 정부의 두 은행 청산 구제 방안은 인테사 산파올로에 특혜를 주는 것이자 정치적 목적으로 납세자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라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 소속의 레타노 브루네타 의원은 "인테사 산파올로는 공짜 선물을 받게 됐고, 정부는 모든 불량 자산을 떠안게 됐다"며 "결국 납세자들이 돈을 내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탈리아 정부는 유로존 전체의 3분의 1 규모이자 전체 대출의 18% 수준인 3천600억 유로의 NPL을 떠안고 있는 이탈리아 은행 부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작년에 시장에서 자금 확충에 실패한 업계 3위 은행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의 회생을 위해서도 66억 유로의 공적 자금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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