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일본 FTA 대기업과 투자자엔 큰 이익, 시민은 손해"
독일 신문, 협상록 입수 분석…"환경과 건강 보호 뒷전"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이대로 타결되면 대기업과 투자자는 큰 이익을 얻는 반면 일반 시민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23일(현지시간)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공영 NDR 및 WDR 방송과 공동 탐사보도 취재과정에서 EU-일본 간 FTA인 경제연대협정(EPA) 협상 과정을 기록한 비밀문건을 단독 입수,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SZ는 수백 쪽에 달하는 협상기록을 보면 협정 체결 시 EU 기업들의 대일 수출액은 20~30% 증가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이는 시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 내용은 기업들은 선호하지만 시민 건강과 환경보호는 소홀하게 취급됐음을 드러내 준다면서 "또한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들은 아예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EU가 중요하게 여기고 각종 법규에 반영돼 있는 '사전 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 조항이 일본과의 협정엔 빠져 있다.
이 원칙이 있으면, 신제품을 출시할 때 인체 혹은 환경에 무해하다는 점을 기업이 스스로 입증해야 해 신제품 개발·판매에 걸림돌이 된다.
반면 이 원칙이 협정에 포함되지 않으면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경우에만' 호르몬 투여 쇠고기나 유전자조작 식품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괴팅겐대학 통상법 전문가 페터-토비아스 슈톨 교수는 "일본과의 FTA 협상 문안엔 이 원칙을 배제하는 듯한 대목이 있고 "EU의 환경 및 소비자보호 기반 원칙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쟁점은 (외국인)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해결 제도 관련 조항이다. FTA 체결국의 부당하고 차별적인 법률 제·개정이나 정책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장할 경우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존의 많은 FTA처럼 일본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게 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선호한다.
반면 유럽 측은 민간기구가 완전히 폐쇄된 장막 뒤에서 분쟁을 조정하는 것은 투명성과 사법주권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많으므로 각국이 합의해 별도의 투자재판소를 만드는 방안을 선호한다.
SZ는 만약 ISD를 받아들이면 스웨덴 바텐팔그룹이 독일 핵발전소 단계적 폐쇄 정책으로 손해를 보았다며 독일 정부를 상대로 50억 유로(약 6조3천600억원) 배상소송을 ICSID에 제기한 것과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어랑겐 대학 통상법 전문가 마르쿠스 크라예브스키 교수는 "일본과의 FTA 문안은 기존에 EU가 체결한 다른 FTA들에 비해 기업에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라예브스키 교수는 "이는 또한 캐나다와의 FTA보다 투자자 국가 소송을 더욱 쉽게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만약 이대로 타결되면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FTA 협상 자료가 외부에 알려지면 심각한 신뢰 위반 행위가 될 것이라고 EU 측에 경고한 바 있다고 SZ는 전했다.
EU와 일본은 협상을 한두달 안에 신속하게 마무리해 올해 안으로 협정을 타결하려 한다. 이달 중순 나온 독일 정부의 FTA협상 상황 내부 보고서는 "아베의 총리 인기가 급락할 위험도 EU가 협상을 가능한 빨리 끝내야 할 이유 중 하나"라는 EU 집행위 문건 속 문장을 인용한 바 있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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