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시대의 베토벤 교향곡…질박한 음색·리듬 생기 돋보여
헤레베헤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지난 200여 년 동안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해왔고 베토벤의 교향곡의 명반들도 수두룩하다. 과연 이 시대에 새롭고도 설득력 있는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해내는 일이 가능할까? 헤레베헤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를 들어본다면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지난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헤레베헤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시대악기 연주 특유의 질박한 음색과 베토벤 음악의 역동성을 살려낸 통찰력 있는 연주로 청중의 호응을 얻었다.
이번 내한공연에선 베토벤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특히 '리듬'의 요소가 매우 중요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과 제7번이 연주되었는데, 이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연주 성향과 잘 맞아떨어졌다.
헤레베헤의 세심한 리드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짧은 선율에서도 섬세한 강약 조절과 정교한 분절법을 구사하며 느린 악장에서나 빠른 악장에서나 생동감 있는 리듬의 맥박을 만들어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연주방식은 기본적으로 베토벤 시대의 연주 스타일을 따르고 있으나, 오케스트라는 완전히 고(古)악기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다. 호른과 플루트를 비롯한 관악기들과 타악기인 팀파니는 개량되지 않은 고악기가 사용된 반면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현악기의 활은 현대식이었다. 그러나 현악기 주자들이 비브라토 없이 깨끗한 음색을 추구하고 활을 가볍게 썼기 때문에 옛 관악기 연주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전반부에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의 경우 관악기 군의 인토네이션이 약간 높고 현악은 낮아서 전반적으로 화음이 불안정했고 콘트라바순과 팀파니 등의 소리가 매우 튀어서 전체적인 음량 밸런스가 깨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2악장 초반에 베토벤이 악보에 적어놓은 리듬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잘 살려낸 비올라 연주는 일품이었고 4악장의 승리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트럼펫과 팀파니의 리듬, 급격한 템포 변화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낸 헤레베헤의 지휘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어두운 단조로 시작해 밝은 장조로 마무리되는 이 교향곡의 극적인 여정을 잘 살려내기 위해 폭발적인 악센트나 굵고 충실한 음색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조금 달랐다.
현악 주자들은 지극히 단순한 운지법을 사용한 데다 연주자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아서 다른 악기들에 비해 그 소리가 약하기는 했으나, 그 음색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가득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선 금기시되는 개방현(현악기 주자가 손가락을 줄에 대지 않고 연주하는 현) 연주도 거침없이 행해지며 날 것 그대로 현악의 질감이 살아난 것도 흥미로웠다.
후반부에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 연주는 전반부 공연보다도 완성도가 높았다. 2악장의 리듬 표현은 특히 훌륭했다. 2악장 초반에 저음 현에 의해 제시되는 리듬 동기는 마치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사라져 가는 아치형 윤곽을 만들어내며 이 악장의 근원적인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이번 공연에선 앙코르로 그 자체로 충실한 무대였다. 헤레베헤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앙코르곡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의 4악장과 3악장을 차례로 선보이며 이 교향곡 특유의 재기발랄한 유머감각을 마음껏 뽐냈다. 본래 콘트라바순이 편성돼있지 않은 교향곡 4번에 콘트라바순을 보강해 연주한 탓인지 저음악기의 빠른 움직임이 더욱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다.
일찍이 베토벤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커스(술의 신)이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번 음악회야말로 본 공연에서부터 앙코르 무대에 이르기까지 베토벤 음악의 생동감에 한껏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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