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웜비어 사건으로 들끓는 미국 내 반북 정서
(서울=연합뉴스)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로 석방된 뒤로 미국 내 반북한 정서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립대 재학생인 웜비어는 지난해 1월 관광 목적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체포됐다. 북한 측이 밝힌 이유는 평양의 한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두 달 후 북한 법정에서 체제 전복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소재가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나 미국 정부에 넘겨졌다.
웜비어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은 재판 직후로 전해졌다. 북한 측의 비공식 설명은 식중독(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려 수면제를 복용하고 나서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미국 소식통이 북한 관리들한테 들은 것인데, 웜비어 가족들에게는 석방을 일주일쯤 앞두고 전해졌다고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웜비어가 법정 선고 때 모습을 드러낸 이후 1년 넘게 코마에 빠져 있었고 그 상태로 북한에서 내보내졌다"고 전했다.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게 많지만 멀쩡했던 대학생이 1년 반이나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났으니 북한에 대한 미국 내 정서가 좋을 리 없다. 그런데 혼수상태에 대한 북한 측의 억지 설명이 반북 기류를 더 부채질하는 것 같다. 웜비어는 심각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미 의료진은 웜비어의 신체에서 식중독을 일으킨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수면제를 복용하고 심각한 뇌손상을 일으킨 임상례도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북한 측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 내 반북 기류 확산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웜비어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고, 아버지 웜비어는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북한이 내 아들을 다룬 방식에 대해선 문명국가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북한 측 설명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 언론을 통해 미국 내에 신속히 퍼졌다. 소식을 접한 많은 미국인이 충격과 분노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 소위는 15일(현지시간) 북한 인권법을 5년 더 연장하는 재승인법안과 북한에 외부 정보를 투입하는 '2017 권리·지식정보 증진 법안'을 의결했다. 북한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미정부는 북한 여행 금지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사실 미국 내 반북 기류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런데도 주목하는 이유는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주일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공동대응 방안이 중점 논의될 것 같다. 세부적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대응, 북한과의 대화 개시 조건과 속도, 주한미군 사드 배치 등이 중요하고도 민감한 현안으로 꼽힌다. 이런 현안들의 세부 논의 결과는 한미 동맹관계 재확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최근 미국 정부와 정가 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정부가 사드 배치 용지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후에도 그런 기류가 감지됐다. 사드 배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 쪽에서는 주한 미군 철수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상회담 전까지 확실한 입장을 정리해 미국의 의구심을 씻어내는 것이 좋다. 북한과의 대화를 둘러싼 한미 간 시각차도 신경 쓰이는 문제다. 우리가 남북 관계를 이끌어가자는 게 더 좋겠지만 미국과 너무 많이 시각차가 벌어지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웜비어 사건으로 미국 내 반북 정서가 강해지는 마당에 우리 정부가 연일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보낸 것이 그런 경우이다. 모쪼록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 간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감정의 앙금을 말끔히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명분과 실익을 적절히 조화하는 전략적 자세로 더 꼼꼼히 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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