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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감이 처참함으로…여고생이 겪은 한국전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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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감이 처참함으로…여고생이 겪은 한국전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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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감이 처참함으로…여고생이 겪은 한국전쟁의 기억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에세이 '어느 인문학자의 6.25'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그런데, 철교 중간에 있는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르면, 약속이나 한 듯이 헤드라이트들이 꺼져 버리는 것이다. 필름이 끊기듯이 깔끔하게 불들이 꺼져 버리고, 또 꺼져 버리고, 또 꺼져 버리고…… 그 남쪽에는 어둠만 있었다. 다리를 반으로 나누어 보면, 오른쪽에서는 계속 헤드라이트들을 켠 차들이 몰려오고 있고, 불이 꺼지는 지점 왼쪽은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강인숙(84) 영인문학관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다. 삼각지에서 이촌동으로 이사하던 날 북한군이 남침했다. 한밤중 한강철교 폭파음을 들었고, 줄지어 다리를 건너다가 영문도 모른 채 강물에 수직 낙하하는 차량과 인파를 보았다.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강 관장이 최근 펴낸 에세이 '어느 인문학자의 6.25'(에피파니)는 소녀 시절 겪은 한국전쟁의 기록이다. 전쟁이 터진 1950년 6월25일부터 휴전 전후까지 기억을 되살렸다. 앞선 에세이 '셋째 딸 이야기'(2014), '서울, 해방공간의 풍물지'(2016)를 합해 저자는 초등학교부터 학창시절을 책 세 권에 담았다.





막상 공습경보가 울리자 강 관장이 제일 먼저 느낀 건 해방감이었다. '제발 하늘이라도 좀 무너져 내렸으면' 하고 바라던 때였다. 수업 중 나타난 폭격기에 겁을 먹고 허둥대던 선생님들의 모습마저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강다리가 끊기고 "총알이 귀밑을 스치는 상황"을 겪으면서 나중에는 "교수형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함경도 갑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월남한 저자는 북한군 소년병의 함경도 사투리에서 전쟁을 실감한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하는 것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 논에 모를 심는 풍요로운 계절에 그런 참담한 전쟁을 일으킨 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강 관장은 1·4후퇴 때 오빠가 교편을 잡고 있던 군산으로 피란한다. 그곳에서 서정주·정지용·보들레르 같은 시인들을 만나며 문학에 빠졌고 1952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한다. 당시 서울대는 부산 구덕산 기슭에 천막 교사를 차려놓고 있었다. 남편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같은 과 동기생이었다.






저자는 이 전 장관의 일화도 자세히 옮겼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이어령의 별명은 일본말로 밤송이 머리라는 뜻의 '이가구리 아타마'였다. 가시를 사방으로 뻗은 밤송이 같은 머리가 호기심 왕성한 그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저자는 기억했다.

이어령은 원래 강 관장을 향한 친구의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보낸 편지에서 이어령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30도의 술에 취하여 이 글을 쓰오." 강 관장은 일기에 "그가 마신 두 잔 술에 나는 아직도 취해 있는 것 같다"고 썼다.

"이어령 씨는 대단했다. 그는 딴 남자를 쳐다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재학 중에도 그랬지만 졸업한 후에도 그는 날마다 직장이 끝나자마자 만나서 밤 11시가 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았다. 외곬으로 모아지는 그 집착과 몰입과 열정이 나는 싫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확신을 다져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376쪽. 1만8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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