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총선, 사실상 코빈의 승리…'아웃사이더'서 '총리 유력후보'로
정치적 입지 강화 전망…차기 총리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영국 조기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한 가운데 제러미 코빈 대표가 이끄는 노동당이 약진하면서 이번 선거가 사실상 코빈의 승리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9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은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의 예상치 못한 선전에 힘입어 영국 정계에서 그간 정치적 미래가 밝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평가됐던 코빈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선거 결과를 코빈의 "뜻밖의 승리"(stunning triumph)로 표현하면서 노동당이 참패를 각오했던 만큼 코빈의 지지자들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궁지에 몰렸던 코빈과 그의 좌파적 견해의 확실한 승리로 각인될 것으로 내다봤다.
출구조사를 책임진 존 커티스 교수는 WP에 "사람들은 그가 소용없고 무능하며 극단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며 "결과적으로 그는 보수당보다 더 나은 공약을 제시했고 선거유세도 잘했다. 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그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와 맞섰던 버니 샌더스와 자주 비교되는 68세의 코빈 대표가 이번 선거유세에서 기득권층에 맞서며 격변기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지도력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제대로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총선 유세에서 보수당을 이끄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우파 성향 언론은 코빈이 테러공격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관련 문제들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코빈은 보수당의 복지 축소 공약을 들어 메이를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으로, 내무장관 시절 경찰인력을 감축했던 전력을 들어 신중하지 못한 인물로 묘사하면서 이번 선거를 사실상 노동당의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차림으로 유세 현장을 오가는 정감있는 약체로, 빈곤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젊은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40년간 영국 정계에 몸담아온 코빈은 흠잡을 데 없는 사회주의적 배경을 타고 났다.
그의 부모는 스페인 내전 당시 영국 내 활동가로 만났고 그는 보수당 지지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웨스트미들랜즈의 작은 마을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런던 내 좌파 본거지인 아일링튼에서 하원의원(MP)에 당선됐지만 한 번도 주요 공직에 발을 들이지는 않았다.
중도 좌파 성향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이끌던 노동당 내에서도 그는 이라크전 참전 등 주요 정책 사안에서 매번 반대 의견을 내며 맞섰다.
이런 그의 투쟁적 이력이 주류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의 카리스마와 좌파 이력이 오는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승리로 이끌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소하기로 유명한 코빈은 하원의원 중에서 가장 적은 의정 활동비를 사용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채식주의자인 그는 차량을 소유하는 대신 자전거를 애용하며 취미로 잼을 즐겨 만든다.
멕시코 태생으로 스무살 연하인 그의 셋째 부인 라우라 알바레스는 멕시코산 공정무역 커피를 수입한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코빈이 머지않아 영국 총리직을 꿰차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총선에서 제1당인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이른바 '헝 의회'(Hung Parliament)의 출현이 확실시된다.
연정이나 군소정당과의 정책연합을 통한 소수정부의 출범 가능성이 커지면서 NBC방송은 이를 이끌 가장 유력한 후보로 코빈을 꼽고 그가 한때 정치적으로 가망 없는 인물로 여겨졌지만,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그가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군소정당들이 보수당보다는 노동당과 성향이 더 잘 만큼 코빈의 총리 취임이 더는 허황한 상상이 아닐 수 있다고 보도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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