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으로 '일자리·분배' 한 번에…소득주도 성장 정책 첫발
청년·여성 등 취약계층 일자리 대거 창출…중소기업 고용 지원
일자리→분배 개선→소득주도 성장…"공무원 증원 신중해야" 지적도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문재인 정부가 청년·여성·노인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추경) 예산으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첫 삽을 떴다.
이번 추경안은 일자리 창출을 앞세운 첫 추경이면서 동시에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새 정부의 첫 경제정책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번 추경안에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용·내수 부진 문제를 경제적 취약계층 일자리의 전방위 지원으로 돌파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
청년·여성·노인을 위한 공공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치매 지원서비스 등 고용 취약가구의 일자리 여건도 개선해 중장기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 기반을 늘리고 분배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추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했지만 공공부문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나면 중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며 증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청년실업률 사상 최악…분배지표도 악화 일로
정부가 유례가 없는 일자리 창출 추경안을 편성한 것은 고용 상황이 최근의 경기 회복세에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만큼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 요건 중 하나로 대량실업의 우려를 들고 있으며 정부 역시 이런 근거로 추경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까지 치솟으면서 역대 최고치였던 2015년 9.2%를 가볍게 넘어섰다.
지난 4월 실업률도 4.2%로 같은 달 기준으로 17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고 청년 체감실업률이 23.6%를 기록하는 등 올해 들어 24% 내외의 높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의 양뿐만 아니라 질 역시 빠르게 나빠지는 모습이다.
구조조정 탓에 상대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인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 4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간 반면, 퇴직자들이 음식·숙박업 등에 뛰어들면서 자영업자는 9개월 연속 증가했다.
양과 질에서 두루 좋지 않은 고용 상황은 특히 저소득층의 소득 기반을 흔들면서 고소득층과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고 있다.
지난해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전년보다 5.6% 뒷걸음질 쳤지만 5분위 소득은 2.1% 증가했다.
소득 재분배를 위한 정부의 정책이 쏟아졌지만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 많이 줄면서 지난해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분배지표들도 일제히 악화했다.
주로 저소득층에 악재들이 집중되면서 경제 활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그 결과 최근 수출 회복세가 무색할 만큼 소비·투자는 답보만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경제적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한 전방위적 일자리 지원 정책을 내놓은 것은 '실업→소득감소→빈부 격차→내수 부진'으로 이어진 악순환의 고리를 분배 개선을 시작으로 끊어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추경 요건은 '대량실업 발생 우려'에 있다고 보고 있다"라며 "앞으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청년실업률 개선은 어렵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일자리 만들고 여건까지 전방위 지원…SOC 사업 원천 배제
이번 일자리 지원 추경안은 복지·안전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대폭 늘리면서 치매·중증장애 가구 지원 등 일자리 여건까지 함께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용 취약계층이 열악한 일자리만 전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여건까지 개선해 장기적인 고용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추경안으로 만들어지는 8만6천개 일자리 중 7만1천개가 공공부문 일자리로 이중 상당수가 소방·경찰·사회복지전담공무원·보육교사 등 사회서비스 분야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면서 동시에 사회서비스의 질 또한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와 동시에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노인·중증장애·치매 가구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 치매 안심센터를 252개소 설치하는 등 치매 국가책임제 인프라를 구축하고 노인·중증장애인에 대한 부양의무제를 면제해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치매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은 대부분 상시적인 돌봄이 필요해 가구 구성원들이 대부분 일용직을 전전하는 등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새일센터 인력을 보강하는 동시에 육아휴직 급여도 통상임금의 40%에서 80%로 확대하는 등 일·가정 양립 지원도 확대한다.
고소득-저소득가구, 대기업-중소기업, 서울·수도권-지방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도 다수 눈에 띈다.
3명을 신규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1명의 임금을 연간 2천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 정규직의 자산 형성을 돕는 청년내일채움공제 만기 수령액을 1천200만원에서 1천600만원으로 늘린 것도 대기업 직원과의 자산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전체 추경 재원의 30%가 넘는 3조5천억원을 지방교부금으로 배정해 일자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있는 지방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임금을 낮춰 투자를 유도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 도입을 추진하는 등 지역형 상생모델에 대한 지원도 본격화한다.
지방은 서울·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자리 창출 여력이 많지 않지만 각각의 상황에 맞는 지역밀착형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중장기적인 개선을 꾀한다는 것이다.
추경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배제함으로써 선심성 나눠주기 추경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 "공무원 증원, 장기적 재정부담…신중하게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우선 일자리 추경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추경이 집행되면 최악의 상황인 고용시장도 나아지고 성장률 제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제 막 수출이 기지개를 켠 상황에서 민간 투자가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정부가 선제로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재정적자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하지만 고령화 등으로 수요가 있는 사회복지·보육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규모도 적정해 보이고 국채 발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담도 덜하다"라며 "내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 승수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공무원 증원이 당장 큰 부담은 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부채를 늘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증원의 경우 추경안 부담분보다 내년 예산 부담이 더 클 수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공무원 증원에 드는 예산은 올해 80억원에 불과하지만 내년부터는 고정 예산이 된다"라며 "내년부터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마치 국민 부담이 없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유도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김정식 교수는 "사회서비스 공공부문은 계약직 위주로 고용이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신중한 증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추경안이 민간지출을 유도해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까지 내기 위해서는 경제회복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 만큼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추경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2∼0.4%포인트 상승할 수 있지만 이는 민간지출을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잘한다고 할 때 예상 가능한 것"이라며 "일자리 100일 계획이 목표로 하는 일자리 창출 기반 강화와 질 제고가 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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