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대 땅 가진 조현병 60대, 전재산 뺏기고 정신병원행(종합)
정보기관 사칭해 부동산 가로챈 파렴치 강도 일당 8명 검거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2014년까지만 해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는 빌딩 숲 한가운데 알짜배기 땅에서 비효율적이게도 주차장을 운영하던 한 노인이 있었다.
노인 A(67)씨는 자신이 소유한 주차장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그 안에서 빵 따위로 끼니를 때우며 빈궁하게 살았다.
그를 아는 주변 상인과 주민들은 이상한 노인이라며 쑥덕댔다. 일부는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하시라"고 조언했으나, A씨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가끔 부동산 업자들이 가치가 약 35억원에 달하는 100평짜리 공터를 탐내고 컨테이너를 기웃거렸으나, A씨는 절대 팔 수 없는 땅이라며 완력까지 사용해 업자들을 쫓아냈다.
A씨가 양재동에 의문의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살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다.
6·25전쟁 즈음 태어난 A씨는 무역회사를 운영했는데 1980년대 경제 호황의 파도를 타고 큰돈을 손에 쥐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2년께 급격한 저성장 기조에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A씨 회사도 부도를 면치 못했다.
A씨는 이때부터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3년 마지막 남은 돈으로 강동구 성내동에 70평, 양재동에 100평짜리 땅을 샀다. 그리고는 양재동 땅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그곳에 살면서 주차장을 운영했다.
A씨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거나 부동산으로 돈을 굴릴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 땅에 대한 심한 집착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차단했다.
또 정보기관에 강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바뀐 2천년대에도 "안기부가 나를 해칠 것 같다"며 원인 모를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A씨에게 2014년께 양재동 토박이 박모(57)씨가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박씨는 부동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지인 정모(45)씨에게 A씨 이야기를 했고, 이들은 현재 가치로 약 50억원에 달하는 A씨의 두 땅을 빼앗기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
정씨와 박씨는 우선 지인 김모(61·여)씨에게 "A씨와 결혼한 척 허위 혼인신고를 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범행을 도와주면 빌라를 한 채 사주겠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범행에 가담했다.
그리고는 2015년 1월 말 이들 3명은 정씨 회사 직원 임모씨와 함께 A씨의 컨테이너에 쳐들어갔다.
이들은 A씨의 조현병 증세를 이용해 "안기부에서 나왔다. 당신을 수사하고 있다"면서 전기충격기 등으로 그를 폭행했다.
결국 A씨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정씨 일당에 무릎을 꿇었다. 이들은 A씨에게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 등 필요한 서류를 떼도록 지시하고 감시했다.
서류를 모두 받은 후에는 A씨를 충북 청주 등 지방 모텔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니면서 7개월간 감금했다.
동시에 두 부동산은 모두 팔아치웠다. 2015년 2월께 양재동 땅을 팔고 4월께 성내동 땅을 팔아서, 세금 떼고 30억원가량을 챙겼다.
범행을 완료한 정씨 일당은 완전범죄를 노리고 A씨를 전북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김씨가 A씨와 허위 혼인신고를 해서 법적 보호자가 돼 있었기 때문에 강제입원이 가능했다.
경찰은 '50억대 자산을 갖고 있던 노인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개월 동안 추적한 끝에 정씨 일당을 모두 검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수강도 및 특수감금 등 혐의로 주범인 정씨와 박씨, 김씨, 임씨를 구속했다. 폭행·감금 과정에 단순 가담한 공범 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 일당은 범행으로 벌어들인 30억원을 일부 다른 부동산에 투자했으나 실패하고, 나머지 돈은 강원랜드에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아직 전북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재산이던 토지가 모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A씨 보호의무자를 김씨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전환했고, 당장 치료비와 생계비부터 막막한 A씨를 도울 지원 방안을 찾고 있다.
A씨가 빼앗긴 두 땅에는 모두 고층 다세대 빌라가 들어섰다고 경찰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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