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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 영감 수발 요양사가 꿈" 만학도 어르신들 사연 '애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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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 영감 수발 요양사가 꿈" 만학도 어르신들 사연 '애절'

충주 한글학교서 50여점 시화전…까막눈 설움·배움의 환희 '생생'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청국장 된장찌개 잠깐이면 뚝딱뚝딱 / 주소만 쓸라카믄 진땀은 삐질삐질 / 요리하는 내 손은 예쁜데 글 쓰는 내 손은 왜 이러지"





가정 사정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해 뒤늦게 한글을 깨우친 어르신들이 손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시화(詩畵)에 담은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8일 충주시에 따르면 시가 최근 개최한 '성인 문해(文解) 학습자 시화전'에는 충주 지역 6개 성인문해학교(한글학교) 학생 작품 50여 점이 출품됐다.

한글학교 학생들은 한창 배울 나이에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평생 까막눈의 설움을 안고 살아온 노인이 대부분이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게 된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남편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손주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군대 간 손자를 위해 위문편지를 쓰려고 등록한 경우도 있다.

요리라면 자신 있는 김형심(68·여)씨가 쓴 '글도 쓸 줄 아는 예쁜 손'이란 시에는 한글을 몰라 겪은 마음고생과 배움의 기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요리하는 내 손은 예쁜데 글 쓰는 내 손은 왜 이러지 / 그러나 이제는 자신 있네 / 주소도 쓸 수 있고 편지도 쓸 수 있다네 / 이제는 글 쓰는 손도 예쁜 손 됐다네"






시집 오자마자 남편이 입대한 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애인 시동생까지 돌보며 농사를 짓던 시절을 돌아보는 작품에선 그 시절의 설움과 한이 그대로 전해진다.

"시집 온 지 28일 만에 부산 육군에 입대한 남편 / 홀시어머니 모시고 담배농사 누에치기 / 벼농사 끝없는 일에 꼽추 시동생까지 / 어굴(억울)하고 힘든 마음 전하려 해도 / 전할 수 없는 이 마음 캄캄한 밤길보다도 더 어두운 이 마음 / 주거(죽어) 귀신이 데서라도(돼서라도) 당신 차자가(찾아가) 하소연하고 싶어 한글공부 시작했네"(김순자·여·77)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 건축 현장에서 일하면서 글을 몰라 애를 태우다가 가까스로 한글을 깨우쳤지만, 나이가 들어 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어머니도 있다.

"한글을 몰라 안전교육을 바꼬(받고) 종이에 머를(뭐를) 쓰라고 하면 쓸 줄 몰라 우물우물하면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 우리 아들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지 / 이제는 일꼬(읽고) 쓸 줄 아는데 꼬부랑 할매라고 불러주는 데가 없네"(임탄실·여·75)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중풍까지 겹쳐 휠체어 신세를 지는 남편을 향해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한 애절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제는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 없으면 꼼짝 못 하는 영감 / 그래도 영감이 곁에 있어 고마워요 / 한글 배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 당신 곁을 지켜드리고 싶어유"(신금자·여·77)

그림을 보고 내용을 짐작해 손주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그림만 보고 지어 짜서 동화책 읽어 주었네 / 지금은 열린학교에서 글 배워 동화책 읽어 줄 수 있는데 / 이제는 그 손자 벌써 대학교 다니네"(이한옥·여·73)

배움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노래한 시는 젊은 세대에게 큰 울림을 준다.

유춘자(77·여) 씨는 "큰아들 결혼에 손주까지 본 기쁨보다 / 딸 시집 보내어 후련한 기쁨보다 / 더 큰 기쁨은 바로 글자를 배운 것 / 떠오른 햇빛이 밝다한들 글 배운 내 마음보다 더 밝을까"

k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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