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난폭운전 횡행…'차량 몰수' 칼 빼든 사법부
법원 "위험한 물건 몰수하는 게 재범 막는 효과적 방법"
검·경 지난해 처벌 기준 강화 이후 압수 사례 증가세
(전국종합=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지난 1월 25일 오후 11시 43분께 청주시 흥덕구의 한 주점을 나선 안모(35)씨는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
얼마 뒤 그는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관과 맞닥뜨렸다.
안씨의 취기를 눈치챈 단속 경찰관이 그에게 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안씨는 이를 거부한 채 단속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차에 매달려 131m가량 끌려간 단속 경찰관은 길가에 주차된 차량과 부딪친 후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전치 8주의 상처를 입었다.
뒤늦게 붙잡힌 안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95%였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법정에 선 안씨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그가 운전한 외제차량 1대를 몰수했다.
안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차량 몰수에 대해서는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이승한 부장판사)는 24일 "피고인의 비슷한 범행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위험한 물건인 차량을 몰수하는 것"이라며 안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권력 경시 풍조 근절과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차량 몰수 처분은 형벌 간 비례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경제적 문제만으로 이 처분을 철회하는 것도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음주 운전자나 위험 운전자가 모는 차량을 범죄에 이용되는 '흉기'로 간주하고 엄단한 판결이다.
형법 제48조는 범죄행위에 제공했거나 제공하려고 한 물건은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검찰이 몰수를 구형하면 법원이 판결로 최종 가부를 결정한다.
때에 따라 '도로 위 흉기'가 되는 차량 역시 몰수 대상에 포함된다.
이런 처벌 기조는 지난해 4월 25일부터 검찰과 경찰이 '음주 운전 사범 단속 및 처벌 강화 방안'을 시행하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 전에도 차량 몰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제주지검이 상습 무면허 음주 운전을 일삼은 40대에게 차량 몰수를 구형해 몰수 판결을 끌어내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강화된 규정에 따라 최근 5년간 5번의 음주 운전을 한 경우, 음주 사망사고를 낸 경우 등 압수나 몰수 요건이 더욱 명확해지면서 처분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대구지검은 지난 2월 음주 운전 전과 5범의 A(49)씨와 B(50)씨가 재차 무면허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자, 이들을 구속기소 하는 한편 차량을 모두 압수했다.
차량 몰수는 경각심을 높여 음주운전이나 난폭운전 재발을 막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는 뉴욕 경찰국이 1999년 2월 한 달 동안 음주 운전 차량을 압수하자 음주 운전이 25%, 음주 운전 교통사고가 38.5% 줄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다만 현행 차량 몰수제에도 허점은 있다.
몰수는 범죄자 소유 물건만 가능해 렌터카 등 다른 사람의 차를 몰다 사고를 낸 음주 운전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화물차 등 생업 종사자의 차량 몰수는 재산권 침해 등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폭 넓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음주 또는 위험 운전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사법부와 수사기관이 엄단 의지를 분명히 하고, 부수적인 처벌 수단인 차량 몰수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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