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 "상상력과 감성 충만한 서울 배경으로 소설 쓰는중"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빛나 언더 더 스카이' 집필중"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서울은 판타지가 넘치고 다양한 상상력과 감성이 충만한 도시예요. 이런 요소가 문학의 특성 아닙니까. 서울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정체성이기도 하죠."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신촌·여의도·잠실 등 시내 지명을 읊으며 '서울 예찬론'을 펼쳤다.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에 온 르 클레지오는 서울을 고전적 분위기의 도시 파리와 비교했다. 파리가 "예전의 유산을 지키는 느낌, 왕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라면 서울은 "움직임이 강하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살고 있어 이야기를 상상하는 게 가능한 공간"이라고도 했다.
문학작품의 무대로 맞춤이라는 얘기다. 르 클레지오는 서울을 배경으로 집필 중인 소설 '빛나 언더 더 스카이'(Bitna under the Sky·가제)의 내용도 소개했다. "한 젊은 여성이 또 다른 젊은 여성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듣는 여성은 전신이 마비돼 전혀 움직일 수 없어요. 상상력을 가미해 서울 여러 곳을 묘사합니다. 서울 여행기를 기대하시면 안 돼요.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서울에서 갖게 된 느낌과 감정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다음 달에 마무리해 늦여름쯤 나올 거예요. 제목을 이미 정했다는 게 중요해요. 제목 정했으면 절반 이상 된 거죠." 소설은 프랑스어·영어·한국어판으로 동시에 출간될 예정이다.
르 클레지오는 최근 새 대통령을 선출한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견해도 내비쳤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에 대해 "세계 정치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다.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잔잔한 빛을 통해 시민이 의지를 표명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은 오래된 정치에 많은 시민이 환멸을 느끼지만 한국은 젊은 정신이 작동하고 있어요. 한국의 촛불시위는 시민의 뜻을 모아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했어요. 반면 유럽의 포퓰리즘은 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에요. 민족주의의 나쁜 면만 드러낸 것이죠."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집필과 강연활동을 했고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는 등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 '지한파' 작가로 꼽힌다. 그는 한국 작가들이 장르 경계를 파괴하는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며 한강의 소설을 예로 들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다보면 시적 매력이 넘치는 문장을 볼 수 있다. 문학 장르 사이에 경계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쳤기 때문에 그 유산을 극복하려는 민족주의의 발로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젊은 작가들은 이를 극복하고 보편적 문학을 하고 있어요. 김애란 소설에는 풍자와 유머가 있고요. 한강은 내면의 감정과 소통의 어려움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 두 작가가 한국인의 정체성에 몰두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글을 쓰는 멋진 작가들이죠."
르 클레지오는 포럼 마지막 날인 25일 '작가와 시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그는 "번역과 각색, 요약판을 통한 문학의 보급은 국경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며 "문학은 가장 전위적인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24일은 서울대 불어문화권연구소 초청으로 교내 신양관 국제회의실에서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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