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회귀 대신 개방 선택한 이란 민심…로하니에 젊은층 '몰표'
"제2의 아마디네자드 통치는 싫다" 강경 보수후보 라이시에 반감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민심은 결국 보수 정권으로의 회귀 대신 개방과 인권을 선택했다.
이들의 열망을 안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중도·개혁파의 일방적인 지지에 힘입어 과반 득표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2013년 대선(50.9%) 득표율보다 약 6%포인트 표를 더 얻어 대통령에 다시 한 번 당선됐다.
이란 유권자들은 로하니 대통령의 핵합의와 친서방 개혁, 인권 신장 정책에 더욱 힘을 실어 준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은 후보를 단일화한 보수파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 쉽지 않은 대결을 벌여야 했다.
강경 보수 성직자 에브라힘 라이시는 로하니 대통령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40∼50%의 지지율로 1위를 유지하긴 했지만 실업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핵합의가 오히려 빈부차를 조장했다면서 거센 공세를 폈다.
라이시가 다른 보수 유력후보 모하마드 바게르 칼리바프 테헤란 시장과 선거 나흘 전 전격 단일화를 성사하면서 라이시의 역전승 가능성도 점쳐졌다.
로하니 대통령의 예상밖 낙승에 대해 막판 판세가 요동하면서 보수후보가 급부상하자 로하니 대통령을 지지하는 개혁 성향의 젊은층과 여성의 표 결집이 일어났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세대별·성별 지지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이런 중도·개혁파의 집결 현상은 현장에서 감지됐다.
개혁 성향의 유권자가 몰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테헤란 북부 호세니예 에르샤드 모스크 투표소엔 대선일인 19일 아침부터 유권자가 대거 몰려 100m가 넘는 줄이 생겼다.
이란에서 유권자는 주소지와 관계없이 투표소를 선택할 수 있다.
이 곳에서 투표하려고 기다리던 로하니 지지자 나자닌(30) 씨는 "지금까지 항상 여기서 투표했는데 오늘처럼 줄이 긴 적은 처음"이라며 "라이시의 지지율 상승에 위기를 느낀 젊은 유권자들"이라고 말했다.
다른 로하니 지지자인 마리얌(31) 씨는 "어머니가 라이시를 찍으려고 해 간신히 설득했다"며 "라이시가 당선되면 이란은 다시 아마디네자드 시대로 되돌아가게 될 텐데 그건 싫다"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아마디네자드 시대'는 2005년부터 8년간 이어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을 이른다.
이란 젊은 층의 강경 보수 정권에 대한 반감은 이 기간 겪은 '나쁜 경험' 때문이다.
젊은 층은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력한 통제 정책을 폈던 당시를 '암흑기'라고 부를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디네자드 정권 때 도입된 가슈테에르샤드(주의를 주는 순찰)다.
이 제도는 경찰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거나 화려하게 화장한 여성을 길거리에서 체포해 계도 또는 과태료에 처하는 일종의 '풍속 단속'이었다.
여성들은 길을 걷거나 운전하면서도 이들 경찰의 눈치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또 위성TV와 인터넷을 제한해 '즐거움'과 표현의 자유가 급격히 위축됐다.
여전히 이란에서 소셜 네트워크 접속이 금지되지만 로하니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이용 확대, 집회·결사의 자유, 남녀평등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
이번 대선 기간 소셜 네트워크에선 강경 보수 인사인 라이시가 당선될 경우 다시 겪게 될 '사회 통제'에 대한 어두운 예측이 급속히 확산해 개혁 진영 젊은 층의 결집에 한 몫했다.
지금처럼 머리카락 일부를 가리는 게 아니라 전체를 가리는 엄격한 히잡을 써야 한다든지, 여성의 실외 흡연과 운전이 금지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라이시의 극렬 지지자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라이시가 당선된 그 날부터 '불량 히잡'을 쓴 여자들을 혼내 줘야 한다"는 위협성 글을 올려 공포 분위기를 잡았다.
라이시는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 노장년층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젊은 층의 표결집을 막지는 못한 셈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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