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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예비치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이 역사의 영웅"

"원전사고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의 시각에서 공산주의의 민낯이 어떤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사람들은 국가의 이용대상이었어요. 국가는 작은 사람들을 죽였고 (타인을) 죽이게 만들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작은 사람들은 역사의 영웅이자 주인입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9)는 19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책에 등장하는 증언자들을 '작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작은 사람들의 역사는 거의 간과되고 있다. 내 책은 그런 역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제부터는 고난을 겪어낸 '큰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는 23∼25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한했다.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독특한 문학장르의 창시자다. 스스로는 '소설-코러스'라고 부른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다음(多音)의 작품을 써왔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적게는 200명에서 많으면 500명을 인터뷰한다. 한 사람을 대여섯 번씩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5∼10년에 한 편씩 써왔다. 수집하는 증언의 분량뿐 아니라 증언자의 머릿속에서 삭제되고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는 작업도 중요하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의 모든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진실을 추출해내는 일은 간단하지 않아요. 소련 시절 프로파간다에 압도된 사람들이어서 선전선동에 물든 내용을 걸러내고 인생의 진실을 추려내야 합니다. 진실을 최우선 화두로 놓고 쓰고 있습니다."






작가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들('체르노빌의 목소리')이나 전쟁에 참전한 여성들('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처럼 역사적 재앙으로부터 상처 입은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전해왔다. 최근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된 소년병과 그들의 어머니의 증언을 담은 '아연 소년들'(문학동네)이 번역·출간됐다.

작가는 전쟁을 책의 주제로 삼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에 주목한다"고 설명했다. "전쟁은 그 자체가 살인이고 전쟁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있을 수 없다"며 "21세기에 죽여야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이념이나 이상"이라고도 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는 작가의 말은 일본의 옆나라이자 북한의 핵위협에 직면한 한국의 상황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작가는 "한국의 원전은 아직 무사히 작동되고 있지만 한국은 일본과 가까운 나라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이 물이나 공기 안에 스며들어 퍼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인류가 이런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우려했다. 15년 전 일본에서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출간됐을 당시 "체르노빌 사태는 러시아의 무질서 때문이다. 일본은 러시아와 달리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나라"라는 게 현지 독자들의 주된 반응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책이 출간된 이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문명화된 국가인 일본조차도 방사능의 힘 앞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최근 한국문학의 새로운 움직임인 '세월호 문학'에도 조언했다. "세월호를 주제로 쓴다면 작가는 철학적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뻔하고 세속적인 비극이 되지 않으려면요. 저널리즘뿐 아니라 사회학적·문학적 접근도 필요합니다. 제 작품에 문학적 아름다움을 시도한 건 끔찍한 일로 가득찬 인간의 삶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끔찍한 일들을 이미 세상에 넘칩니다. 사람들의 정신을 강건하게 해주는 게 목적입니다."

작가는 서울국제문학포럼 첫날인 23일 '미래에 관한 회상'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방사능 오염이라는 재난이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지 짚는다. 작가는 발제문에서 체르노빌 사고를 "아포칼립스 최초의 굉음"이라고 표현하며 사고 이후 우리는 다른 세상, 미래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곳, 지구에서는 우리가 통치자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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