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내통' 수사에 뿔난 트럼프, 일주일 고심 후 코미에 '해고장'
수사 관련 뉴스 보면서 고함 치기도…경호원 편에 서류로 해임 통보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 데에는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직접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CNN과 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들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국장의 해임을 최소한 일주일 이상 고민했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측근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내통 의혹이 갈수록 커지는데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데 대한 좌절감과 수사에 대한 분노가 코미 국장에게로 향한 것이다.
한 측근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관련 수사가 왜 잦아들지 않는지 측근들에게 거듭 물으면서, 자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TV에서 러시아 수사 관련 뉴스를 보면 고함을 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한밤 트위터에 "코미 국장이 힐러리 클린턴의 악행에 무사통과권을 줬다는 점에서 코미 국장은 클린턴의 최고의 호재였다"며 FBI의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불기소 결정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FBI가 코미 국장이 이메일 스캔들 관련해서 의회에 잘못된 진술을 했다는 발표를 하고,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과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 부장관이 이메일 수사부실 처리를 이유로 해임 건의서를 보낸 것은 해고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전까지는 법무부나 FBI 고위 직원들도 코미의 해임 검토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백악관이 해임 사실을 발표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의원들에게 해임 지지를 구하는 전화를 돌렸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코미 국장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비판을 산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해임이 '윈윈' 전략일 것이라고 믿었으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잠시 물러서는 듯했으나 결국 해임을 강행했다.
해임 방식도 이례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국장에게 직접 해임 사실을 전하는 대신 오랜 경호원인 키스 실러에게 해임 서류를 들려 워싱턴의 FBI 본부로 보냈다.
그러나 당시 코미 국장은 로스앤젤레스에 있었고, 자신의 해임 소식을 다룬 TV 뉴스를 보고서야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됐다. 처음엔 뉴스가 장난일 줄 알고 농담까지 했던 코미 국장은 FBI 본부에 전화를 건 후 해임 통보를 들었다고 CNN은 전했다.
느닷없는 이번 해임의 파장은 컸다.
당장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를 해임한 '토요일 밤의 학살'과 비교하는 비판이 나왔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도 특별검사를 임명해 러시아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해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국장이 트럼프 자신은 수사 대상이 아님을 세 차례나 개인적으로 확인시켜줬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최측근을 겨냥한 수사의 책임자를 갑작스럽게 해고했다는 점에서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임 후 비판적인 언론 보도가 나오자 숀 스파이서 대변인 등 공보팀에 방송에 나가 자신의 결정을 변호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1908년 FBI가 창설된 이래 임기 10년의 FBI 국장이 중도 해임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윤리 위반 등을 이유로 윌리엄 세션스 전 국장을 해고한 바 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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