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난무한 베네수엘라 시위현장에 울려 퍼진 바이올린 선율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두 달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호세 마르티 광장. 9일(현지시간)에도 최루탄을 쏘는 정부군과 화염병을 든 시위대의 격돌은 계속됐다.
그러나 이날 시위는 여느 날과 달랐다. 최루탄과 화염병, 연기로 아수라장이 된 시위현장 한중간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보호장비라곤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헬멧뿐이었다. 시위 참여자들이 그에게 위험하다고 말리고, 최루탄 터지는 굉음이 계속됐지만, 그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직 자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만 열중해 있었다.
비디오 저널리스트인 이반 에르네스토 레이에즈는 그의 연주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고, 이는 CNN 방송을 타고 세계에 방영됐다.
레이에즈는 공중에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선율이 처음에는 스피커에서 나온 것인 줄 알았으나 돌아다보니 "그 애가 있었다"고 전했다.
레이에즈는 "그가 연주를 계속하는 바람에 이름을 물어볼 틈이 없었다"며 연주자가 누구였는지 몰라 안타까워했다.
베네수엘라는 대법원이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 권한을 대법원으로 귀속시키는 조처를 했던 지난 3월 29일부터 격랑에 휩싸였다. 야당이 지배하던 입법부를 폐지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이 장악한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해 국가 권력을 독점하려던 이 시도는 삼일천하로 끝나고 대법원의 조치는 환원됐다.
그러나 식량 부족과 경제위기로 약탈과 굶주림이 횡행하는 이 나라에서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38명이 숨지고 750여 명이 다쳤다.
지난주에는 시위를 벌어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낀 10대 바이올리니스트 아르만도 카니잘레스가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그는 위급한 상황이니 피하자고 설득하는 친구를 뿌리치고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며 시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틀 후 타렉 엘 아이사미 부통령은 카니잘레스가 시위대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발표했다.
카니잘레스는 베네수엘라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에서 활동하던 연주자였다. 그의 장례식장은 베네수엘라 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슬픔을 못 이겨 흐느끼는 남녀 젊은 음악인들로 가득 찼다.
호세 마르티 광장의 격렬한 시위 현장에 울려 퍼진 애절한 선율은 카니잘레스를 기림으로써 반독재를 외친 또 다른 저항의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https://youtu.be/ESVwDYp36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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