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체제보장' 트럼프 카드, 北김정은 움직일까
日언론보도 주목…'상황되면 만난다'→'핵포기시 미국서 만난다' 구체화
北, 당분간 美 의중 탐색할 듯…벼량끝 전술이냐 협상 전환이냐 고민 가중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및 북한 체제보장 카드가 김정은의 비핵화 결단을 끌어낼 수 있을까.
북핵 외교가는 기존 외교의 문법을 완전히 무시한 트럼프발 대북 접근법을 주시하고 있다. '설마'하는 반응과 '트럼프니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반응이 교차하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상황"이 되면 북한 김정은과 "영예롭게" 만나겠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허풍'이 섞인 정치적 수사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포기를 조건으로 미국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제안을 중국에 했다는 일본 교도통신의 9일자 보도가 나오면서 트럼프의 발언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회담의 구체적 조건과 장소, 중개역(중국)까지 언급된 보도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트럼프는 ▲ 국가체제의 전환을 추구하지 않는다 ▲ 김정은 정권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 ▲ 남북통일을 가속화 하려 하지 않는다 ▲ 미군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는 38선을 넘어서 북한에 진공하지 않는다 등 대북정책과 관련한 '4가지 노(NO)' 방침을 보증하겠다는 의사도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교도는 전했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과 조명록 당시 북한 인민군 차수의 방미가 북미간 역대 최고위급 교류였던 점을 봐도 알 수 있듯 기술적으로 아직 전쟁을 끝내지 않은 양국의 정상회담은 일반적인 정상회담과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다. 북미 국교정상화가 이뤄지거나, 최소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 단계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가 8일(현지시간) 한 방송에 출연해 '미국 대통령이라면 김정은을 만날 수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 미국 내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핵무기 개발, 폭정과 주민 인권유린 등으로 인해 전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낙인찍힌 김정은을 미국 현직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반적 정서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으로는 트럼프의 전임자인 조지 W. 부시(2001∼2009년 집권)도 2008년 4월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을 만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노(No)"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됐던 부시와 달리 이념보다는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라는 중대 안보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위해 '거래의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따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트럼프가 언급한 북미 정상회담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북핵 문제 해결의 '종착역'을 미리 제시하며 김정은에게 '거래'에 대한 1차 오퍼를 던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관심은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의 전략적 도발 없이 4월을 보낸 김정은이 이 같은 트럼프의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쏠린다.
북한은 최근 관영매체를 통해 미국, 중국에 각을 세우며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주변 전개와 "행동해야 한다면 행동한다"(트럼프 대통령의 1일 폭스뉴스 인터뷰)는 발언 등에서 감지되는 트럼프발 대북 압박의 전례없는 강도와 예측 불가성은 북한의 셈법 변화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는 요인이다.
더불어 중국이 북핵 해결에 과거와 다른 적극성을 보이며 대북 압박에 동참하고 있는 점은 북한이 핵무기를 고도화할 시간만 벌어준다는 지적이 나왔던 '전략적 인내'의 시기와 차별화하는 요소다.
당분간 북한은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 중인 미국과의 '반관반민' 대화 등 계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을 탐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탐색 후 위기 격화를 통한 '벼랑 끝 전술'과 '대화로의 일대 전환'이라는 두 진로 사이에서 중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외교가는 '최대한도의 압박과 관여'로 이름붙은 트럼프 북핵 해법의 향배에 영향을 줄 요인으로 미·중간의 대북 협력이 상당기간 지속될지 여부와 한국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대북 압박과 대화 모두에 긴밀한 국제 공조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jh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