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새역사] 출범 34년만에 이룬 쾌거
시총 417배인 1천454조5천780억원으로 급증
일평균 거래대금 59억→4조5천589억원 773배로 성장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전명훈 기자 = 코스피가 출범 34년 만에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이제부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전대미답(前代未踏)의 길을 걷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카드 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태풍과 폭풍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온 끝에 얻어낸 쾌거다
코스피는 1983년 1월 4일 122.52로 첫발을 내디뎠다.
출범 3년 전인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을 기준(100)으로 처음 공표됐는데 첫해 수익률은 -4.79%였다.
1980년대 코스피는 건설, 금융, 무역 등 3개 업종이 이끌었다. '트로이카'로 불리던 이들 업종은 저달러·저금리·저유가 등 3저(低) 효과를 토대로 상승장의 주인공이 됐다. 코스피는 1989년 사상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했다.
등락을 반복하던 코스피는 1990년대 중후반 최대 위기인 IMF 사태를 맞았다.
코스피는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 합의 때 379.31까지 떨어졌다. 이듬해 6월에는 1987년 이후 최저점인 280.00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코스피도 되살아났다.
1999년에는 IT 투자 열풍 속에 주식시장이 급등세를 보였다.
금세 1,000선을 되찾은 코스피는 다시 날아오를 듯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인 IT 거품 붕괴에 카드 대란과 건설경기 과열 후유증 등이 겹치면서 코스피는 다시 추락했다.
여기에 2001년 9·11 테러까지 발생했다. 테러 다음 날에는 지수가 하루 만에 12.02% 폭락, 400대로 주저앉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하고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까지 공급되면서 코스피는 다시 상승 여력을 되찾았다. 2005년에는 1,000선을 회복했고 적립식 펀드 열풍 등으로 중장기 투자자금이 유입되면서 2007년 7월 25일에는 처음 2,000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2008년에는 또다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미국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코스피가 다시 추락했다. 5월 1,900대에 이르던 지수가 10월 말 892.16까지 폭락했다. 10월 16일에는 하루 만에 코스피가 126.5포인트 떨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 환율이 치솟고 코스피가 폭락하자 환율이 코스피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환율이 주가였으면 좋겠다'는 푸념도 나왔다.
이후 코스피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의 활약으로 부활했다.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외국인의 펀드 자금이 유입되고 국내외 경제가 튼튼하게 되살아나면서 코스피가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이즈음 터진 일본의 대지진으로 우리 증시가 일부 반사 이익을 봤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 시기 기록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2,228.96)는 이후로 6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코스피는 최고치 기록을 세운 직후 미국 신용등급 하락, 유럽 재정위기 등에 밀려 다시 2,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최고치가 새롭게 쓰일 때까지 코스피는 6년 동안이나 완만한 등락을 반복하며 박스에 갇혀 있었다.
그동안 코스피의 덩치는 훌쩍 커졌다.
1983년 3조4천90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이날 417배인 1천454조5천780억원으로 불어났다.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1983년 59억원에서 4조5천589억원으로 773배가 됐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수는 328개사에서 770개사로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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