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10주기…"영원히 늙지 않는 5월의 소년"
'피천득 평전' 첫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오월' 부분)
한국 서정문학에 큰 획을 그은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은 5월에 태어나 5월을 사랑하다가 5월에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제자인 정정호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가 피천득의 생애와 문학·사상을 정리한 '피천득 평전'(시와진실)을 펴냈다. 다음달 10주기(5월25일)를 앞두고 나온 첫 평전이다.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채 평생 추구한 '어린이 되기'는 피천득 문학의 영혼이자 중추였다. 아호부터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단순한 형식의 시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시선을 담았다. 이런 문학적 원형은 그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주어졌다고 보는 편이 맞다. 피천득은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열 살에 어머니를 잃고 어른으로 성장을 멈췄다고 저자는 말한다.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은 피천득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슬픔과 더불어 그의 문학에서 숙명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부인을 통해 그가 신동이라는 소문을 들은 이광수는 피천득을 자신의 집에서 3년간 머무르게 하며 영어와 영시를 가르쳤다. 이광수 역시 열한 살에 부모를 여읜 고아였다. 피천득은 1926년 이광수의 권유로 중국 상하이(上海)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이 아닌 상하이를 유학지로 택한 배경엔 당시 임시정부 요원으로 있던 안창호가 있었다. 피천득은 흥사단 단우가 돼 매주 두 번씩 안창호의 가르침을 받았다. 피천득은 훗날 안창호의 가르침 가운데 '절대적인 정직'을 으뜸으로 꼽으며 자기 문학의 뿌리이자 근본정신이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이광수와 안창호가 인생의 영원한 스승이었다면 그가 사랑한 시인 도연명·황진이·셰익스피어는 문학과 정신세계의 틀을 지었다. 서울 한복판 청진동에서 태어난 피천득이 평생 시끄럽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고자 한 데는 전원시인 도연명의 영향이 컸다. 그는 수필 '도연명'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도연명은 41세에 귀거래(歸去來)하였다. 나는 내일 모레 50이 되는데 늙은 말 같은 이 몸을 채찍질하며 잘못 들어선 길을 가고 있다."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요// 나무가 되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축복' 부분) 피천득 문학에서 나무는 어린이와 더불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나무 되기'는 '어린이 되기'와 함께 피천득의 꿈이었다. 어린이는 자라나는 나무에 비유되고 어린이와 나무는 희망의 표상이다.
피천득의 삶은 어린이 같았고 사상은 나무 같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린이 같은 나무 되기, 나무 같은 어린이 되기는 영원히 늙지 않는 5월의 소년 금아 피천득이 꿈꾸던 세상이다.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되자. 우리 모두 '나무'가 되자."
평전 출간과 함께 10주기 행사도 잇따라 열린다. 다음달 11일 오후 2시 서울 연건동 흥사단 2층 강당에서 문학 세미나가, 19일 오후 3시에는 예장동 문학의집 서울에서 '음악이 있는 문학마당'이 열려 고인을 추모한다. 기일인 25일은 오후 4시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추모식이 있다. 408쪽. 2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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