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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천 칼럼] 전술핵 재배치, 대책 없이 손사래만 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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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천 칼럼] 전술핵 재배치, 대책 없이 손사래만 치나

(서울=연합뉴스) 전술핵 재배치가 대선 국면의 중요한 안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19일 KBS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사이에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유 후보는 "북한의 핵무기는 거의 실전 배치됐다고 봐야 한다. 전술핵을 한미 공동자산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면서 문 후보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문 후보는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북한에 대한) 핵 폐기 요구 명분을 잃는다. 미국도 반대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답변은 아니지만 '반대한다'는 뜻은 분명했다. 각본 없는 토론회의 한 장면이 전술적 재배치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보여준 것 같아 흥미롭다.


사실 전술핵은 개념부터 모호하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핵무기'로 통하기는 하나 공식화된 것은 아니다. 미사일 같은 '투발수단'에 탑재할 수 있으면 전략핵, 그렇지 않으면 전술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핵 협상가로 유명했던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은 "기술적으로 전략핵과 전술핵을 구분하기 어렵다. 전술핵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영변 핵시설 정밀타격을 검토했을 당시 국방부 장관이 바로 페리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북한 체제 인정과 비핵화를 패키지로 주고받는 일명 '페리 프로세스'를 제시하기도 했다. 핵 협상 경험을 담은 저서의 국내 출판에 맞춰 작년 11월 방한했을 때 그는 주변국 '핵 도미노' 유발 등을 이유로 들면서 전술핵 재배치를 '정말 나쁜 아이디어'라고 일축했다. 국내 진보 진영은 대체로 페리처럼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이다. 반면 보수 진영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반대론자들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의 '핵 없는 세상' 정책에 어긋나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고 있는데 굳이 전술핵을 따로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어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전작권 조기 환수와 자주국방을 입버릇처럼 외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상당히 역설적이다. 한편에선 북한 정권이 워낙 호전적이고 무모해, 우리가 핵무기를 가져도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한테 핵무기는 오로지 응징·보복용이어서 대북 억지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는 작년 10월 한 일간지 기고문에서,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무장 주장은 "곡조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중국의 사드 반발을 예로 들며 "명백히 공격용인 전술핵 재배치를 북·중·러가 보고만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대체로 외부적 요인에 의지해 논리를 펴는 것도 반대론자들의 공통점이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핵제핵(以核制核)'이다. '핵'으로 '핵'에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대화와 협상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는 실험은 실패했고, 어떤 경우에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들은 "핵이 없는 나라가 핵을 가진 나라와 싸우면, 죽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한스 모르겐타우 교수의 경고를 철석같이 믿는다. 이들은 한·미 동맹에 의존해 어색하게 쓰고 있는 '핵우산'도 100%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의 핵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의 처분만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는 미국의 일방적인 핵 감축 정책에 맞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견지했던 입장이기도 하다. 윤용남 전 합참의장(예비역 육군 대장)은 작년 9월 언론 기고문에서 "북한이 우리 수도권 상공에 핵무기를 투하했을 때 미국이 한·미 양국의 희생을 각오하고 핵무기를 평양 상공에 투발하겠는가"라며 "미국과 협의해 전술핵을 재배치하든가 그것이 안 되면 자체 핵무장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안보는 모든 경우의 '만약'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한반도 분단 현실을 남의 일 보듯 하는 '안보 불감증' 환자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한반도 비핵화는 사실 1990년대 초반에 실현됐다. 미국이 주한미군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전면 철수한 것이 1991년 12월인데 그 후 한반도는 상당히 오랜 기간 실질적 '비핵화' 상태였다.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그해 말에 채택됐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며 핵 개발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 1993년 3월이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은 그때로부터 만 13년 7개월 후인 2006년 10월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4월 위기설'을 촉발한 대북 압박 국면에서 "모든 카드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을 수행한 백악관 보좌관이 "전술핵 재배치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 모순이다. '모든 카드'의 끝자락일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배제됐다고 할 수도 없다. 정치만 생물인 것은 아니다. 환경 변화에 따라 인간이 판단을 내리는 모든 영역은 항상 살아서 움직인다. 북핵과 미사일의 전략적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현 상황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새 대북정책을 공개했다. 미국은 지속해서 경제·외교적 압박을 가하면 북한을 핵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적 카드도 감춰놓고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호락호락 손을 들지는 미지수다. 이런 정세 변화에서 전술핵이 비집을 틈이 생긴다. 예컨대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갖다놓고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그 가능성만 살려둔 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 자체로 효과적인 대북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비핵화 선언 같이 오래전에 폐기된 원칙에 얽매여 손사래만 칠 일이 아닌 것이다.(논설실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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