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없이 살아보면…"냉장고의 부엌이 아닌 사람의 부엌"
디자이너 류지현씨 '사람의 부엌'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오늘날 사람들에게 냉장고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당장 먹지 않는 음식을 사다 냉장고에 보관한다. 무조건 냉동고에 장기보관하는 습관 때문에 많은 집에서 냉동고는 음식의 무덤 같은 곳이 됐다.
그러나 냉장고가 우리의 삶에 들어온 지는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냉장고는 1920년대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1960년에야 냉장고가 생산됐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유럽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류지현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냉장고가 없는 부엌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낸 답을 신간 '사람의 부엌'(낮은산 펴냄)에 담았다.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식재료의 특성을 이용해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지식의 선반'을 디자인해 주목받았던 저자는 디자인 물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기로 했다.
책은 저자가 3년간 이탈리아와 남미, 프랑스 등의 부엌과 텃밭, 농장을 찾아 배우고 발견한 냉장고 없이 사는 지혜들을 소개한다.
남미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섬에서는 감자를 냉장고 없이 2∼3년간 보관해 먹는다. 감자를 얼음이 얼 정도의 차가운 물에 넣어두고 하룻밤을 보내면 감자가 언다. 언 감자를 밟아줬다가 다시 냇물에 넣고 얼리고 다시 밟아주는 과정을 일주일간 반복하면 가볍고 오래가는 감자, 툰타(tunta)가 완성된다.
쿠바 아바나에서는 뜨거운 태양 볕에 온갖 채소와 과일을 바짝 말려 실온에서 1년 동안 두고 먹는 저장법을 발견한다. 이탈리아 할머니는 왜 수확한 토마토를 냉장고에 넣지 않느냐는 물음에 "왜 냉장고에 넣어야 하느냐"며 반문한다. 사실 토마토는 10도 이하면 냉방병에 걸려 냉장고보다 밖에 두는 게 더 맛있는 채소다.
버터도 냉장고에 넣지 않고 실온에서 보관할 수 있다. 한쪽 용기에 버터를 넣고 조금 더 큰 다른 용기에 뒤집어 넣은 뒤 남은 공간에 물을 채우면 물이 버터와 공기의 접촉을 차단해 산화를 막는다. 사나흘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면 한 달쯤은 원할 때 바로 부드러운 버터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냉장고 없이 음식을 보관하는 방법 그 자체가 아니라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다. 냉장고가 없던 때 사람들은 먹거리 하나하나의 특성에 관심을 쏟아야 했고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가장 적합한 저장법을 찾아냈다. 그러나 냉장고가 생겨난 이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모든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넣을 뿐이다. 그러다 기한이 지난 음식물들을 버리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자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냉장고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리듬이 아닌 자연과 식재료의 특성과 우리 가족의 식습관을 고려한 리듬을 찾아간다면 부엌은 냉장고의 부엌이 아닌 '사람의 부엌', '나의 부엌'이 될 수 있다.". 380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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