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의 기적' 백지선 "카자흐전 승리, 정말 대단한 경기"
'12전13기' 끝에 첫 승리…IIHF "한국, 새 역사를 썼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키예프의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쾌거였다.
백지선(50·미국명 짐 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4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팰리스 오브 스포츠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A(2부리그) 2차전에서 카자흐스탄에 5-2(1-1 0-1 4-0) 역전승을 거뒀다.
세계 랭킹 23위의 한국은 이번 대회 최강으로 꼽히는 카자흐스탄(16위)을 '12전 13기' 끝에 처음으로 꺾고 전날 폴란드전(4-2승)에 이어 2연승을 달리며 '꿈의 무대'인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승격을 바라보게 됐다.
한국은 1995년 아시안컵에서의 첫 대결에서 1-5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월 일본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의 0-4 패배까지 지금껏 카자흐스탄과 12번 맞붙어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은 이번 대회 우승을 목표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의 귀화 선수 5명을 포함한 베스트 전력으로 임해 승산은 더욱 희박해 보였다.
지난해 월드챔피언십에서 강등된 카자흐스탄은 지금까지 디비전 1에서 귀화 선수들을 출전시킨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이 무대를 만만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카자흐스탄은 디비전 1에서 한국에 패하기 전까지 8연승을 달렸다. 카자흐스탄이 디비전 1에서 패한 것은 4년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홈팀인 헝가리에 1-2로 진 이후 처음이다.
한국 역시 귀화 선수 5명을 데리고 이번 대회에 임했으나 NHL에서 풀타임으로 뛰었던 카자흐스탄 귀화 선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NHL에서 뛴 경험이 있는 선수는 이달 초 우수인재 특별 귀화로 국적을 취득, '백지선호'에 합류한 수비수 알렉스 플란트와 역시 수비수 브라이언 영뿐이다. 플란트와 영은 NHL에서 각각 7경기, 12경기 출전이 고작이었다.
야구로 치면 한국은 '트리플 A'급 용병이었고, 카자흐스탄은 풀타임 메이저리거 용병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카자흐스탄에 5-2의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은 수문장 맷 달튼의 신들린 선방이었다. 달튼은 유효 슈팅에서 한국이 21-32로 크게 뒤진 이 날 경기에서 카자흐스탄의 슈팅 30개를 막아내고 승리를 뒷받침했다.
또 백 감독의 지휘하에 비시즌에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2년째 시행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국은 1-2로 뒤져 패색이 짙던 마지막 3피리어드에서 지친 카자흐스탄을 몰아붙여 4골을 퍼붓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다.
지난달 18~19일 세계 랭킹 2위의 러시아와 친선경기에서 1차전 3-4패, 2차전 2-5패로 두 경기에 모두 패했지만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세계 톱클래스 팀을 상대로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대표팀은 '강호' 카자흐스탄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IIHF 홈페이지에 따르면 백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정말로 대단한 경기였다. 우리는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카자흐스탄은 무척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팀인데, 운 좋게도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과 같은 강팀과 더 많은 경기를 치를수록 우리는 더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카자흐스탄과 같은 강팀과 경기를 치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더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경기였다"고 평했다.
카자흐스탄 사령탑은 패배를 깨끗하게 시인했다.
에두아르드 잔코베츠 감독은 "한국은 매우 강한 팀이었다. 그들은 특히 3피리어드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경기를 펼쳤다. 우리는 좋은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3피리어드에서 2골을 몰아치고 역전극을 견인한 플란트는 "첫 번째 세계선수권에서 역사의 일부분이 돼 정말 기쁘다"며 "승리의 기쁨은 조금만 즐기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1부 리그 승격 가능성을 키운 한국은 25일 밤 11시에 헝가리(19위)와 3차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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