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명품고택 '조견당' 주인이 책을 쓴 까닭은?
'명품고택 명품 강의' 출간 김주태 씨…"좌절과 분노의 한가운데서…"
(영월=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이 책은 희망이 아니라 좌절과 분노의 한 가운데서 만들어졌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고가옥길 27번지 고택 '김종길 가옥(조견당·照見堂)' 주인 김주태(56·문화컬럼니스트) 씨가 최근 출간한 책 '명품고택 명품 강의'의 예사롭지 않은 서문 첫 문장이다.
'우리가 지나쳐온 시간이 머무는 곳, 고택'이란 부드러운 부제를 단 이 책은 산업사회 속에서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의 보고(寶庫) 고택의 아름다움과 가치, 정신·철학 등을 고택 주인의 관점에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의 현주소와 그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발간의 주된 동기가 됐음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의 진리가 어두워 보이지 않으니 밝게 비추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조견당은 김 씨의 10대조 할아버지인 김낙배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고 순조 27년인 1827년에 지은 중부지방의 대표적 반가(班家)다.
행랑채와 동별당, 서별당, 바깥사랑채와 안 사랑채, 안채, 사당 등으로 이뤄져 규모는 120칸에 달했으나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이 소실돼 안채만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2007년 사랑채를 복원하고 2010년 별채를 신축하는 과정을 거쳤다.
800년 된 소나무로 만든 대들보와 음양의 이치를 상징하는 해와 달, 그리고 별로 장식된 합각, 합각 아래 오행을 상징하는 화방벽 등 여느 고택들과 차별화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강원도문화재로 지정됐다.
201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명품고택'으로 지정돼 연간 3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조견당은 지난해 10월 14일 돌연 도 문화재에서 해제되면서 빛을 잃었다.
강원도는 문화재자료 지정 해제 고시를 통해 "부엌이 개조되고 가옥이 기울어지는 등 원형이 훼손되고 있어 문화재자료로서의 가치 상실과 함께 항구적 보존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해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택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조견당으로 인해 건축제한 등 각종 규제를 당해온 이웃 주민들의 문화재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집단행동과 문화재 보존에 대한 지자체 등의 미온적인 태도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지난해 동네 사람들의 문화재 해제 요구에 영월군 등 지자체와 일부 군의원 등 표를 의식한 선출직들의 반문화재 정서로 조견당이 문화재 해제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이럴 때일수록 고택의 중요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간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책 서문에서 "우리 문화의 보고인 고택이 주변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이를 수수방관하는 공무원들의 무능과 무소신, 그리고 모든 것을 표의 향방에 따라 움직이는 선출직들의 행태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참담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살던 집이 문화재로 지정돼 여러 가지 불편이 큰데, 문화재지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들의 민원 화살까지 집주인이 맞아야 하는 문화재 정책이 아쉽다"며 정부 차원의 해법 모색을 촉구했다.
문화재 주위에 대한 건축제한이나 규제로 인한 불만은 정부나 해당 지자체가 문화재와 주민들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문화재 소유자가 주위 사람들의 원망을 듣고 그들의 화살을 맞게 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책에서 고택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자, 미래산업임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 것을 알리는데 한옥만 한 소재가 없다"면서 "정부는 해외 공관이나 우리 문화를 알리는 해외문화원을 한옥으로 짓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해외에 사는 우리 국민의 자부심을 키울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를 찾게 하는 관광마케팅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고택을 보존하고 고택에 담겨있는 문화콘텐츠를 발굴, 육성해 민족의 자긍심을 올리고 문화민족으로서의 위상을 세계무대에 한껏 고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하고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좌절과 분노의 한가운데서도 몸을 일으키곤 했다"고 말했다.
ryu62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