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 시인들의 삼인삼색 시세계
신두호·안미옥·한인준 나란히 첫 시집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30대 초반에 등단 5∼6년차, 젊은 시인 세 명이 창비에서 나란히 첫 시집을 냈다. 시선에는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지만 불안과 황폐함·무의미 속에서 돌파구를 탐색하려는 태도는 엇비슷하다.
201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신두호(33)는 시집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에서 안개가 들어찬 모호하고 추상적인 세계를 그린다. 왜곡되고 파편화한 관계가 필연적으로 소외를 낳는 세계를 시인은 관념으로써 더듬는다.
"불빛마저도 안개 속에서 창궐합니다/ 거리에 속도만이 전시되어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로 기억될지 알지 못합니다/ 어깨를 부딪치고는 영원히 멀어집니다/ (…)/ 이곳에선 언약이 악수를 대신합니다/ 시민들 중 누구도 사회와 접촉하지 않으며/ 극소량의 숨을 서로에게서 전달받습니다" ('자연에의 입문 3' 부분)
연작시의 제목 '자연에의 입문'에서 보듯, 시인은 희미한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서 전복적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리없는 얼굴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박수를 쳐봐/ 추락하는 것에 퍼지는 속성을 부여하려면/ 조롱하듯이/ (…)/ 이는 새로운 시대의 인공호흡이자 심폐소생이며 자기보존의 현장/ 들리지 않는 얼굴을 파헤치며 쏟아지는 더 많은 얼굴들의 흉곽/ 자신의 머리 꼭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는 없기에" ('폭포' 부분) 136쪽. 8천원.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건 정말일까/ 한겨울을 날아가는 벌을 보게 될 때// 투명한 날갯짓일까/ 그렇다면//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 ('시집' 부분)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안미옥(33)의 시집 '온'에는 시어 '마음'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긍정적인 마음은 "나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처럼 실재하지 않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부서지는 마음" 혹은 "긁으면 긁히는 마음"이어서 고통과 상처를 동반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을 응시함으로써 보듬고자 한다. "당분간/ 슬픈 시는 쓰지 않을게// 영혼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을게// (…)// 다짐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고/ 계속 믿고 있었지// 정말 아닐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갑자기 끊겨버린/ 노래의 뒷부분이 생각났다" ('구월' 부분) 136쪽. 8천원.
2013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한 한인준(31)의 시집 '아름다운 그런데'는 셋 중 가장 실험적이다. 새로운 언어체계를 만들듯 형용사나 부사를 명사처럼 쓰고 명사를 동사의 자리에 넣는가 하면 시제마저 뒤섞는다.
"나는을 어쩔 수 없이 그러면과 청바지를 동시마다 입는다고 아예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닌데 두 눈과 함께를 오늘도만큼 출근시키며 바다와 두개 사이에서 나는과 더이상을 하지 않고 이런 건 누가 고민 같다고 말할 때까지 강물에 서서 발목과 넘쳐흐르기만 하는 그러니까로 나는" ('종언: 있' 부분)
"그리고 가만히를 기다린다/ 절대로와 함께라면 모든 것은 이곳으로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 말없이를 올려다볼 것인가/ 저 푸르름은 정말과 같은 것일까. 나 다시는 대문 앞에서 골목과 아닐 것이다" ('종언: 할 말 잃어버리기' 부분)
젊은 시인의 언어 파괴는 말장난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한인준의 시를 '국어 농단'이라고 표현한 시인 황지우는 "폐품들로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들처럼 띄엄띄엄 말들을 널브려놓은 그의 화법에서 독자들은 아마도 세상과 도통 소통이 안 되는, 다친 사랑의 간절함 같은 것을 느낄지 모른다"고 했다. 124쪽. 8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