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대우조선 회사채, 국민 노후자금 축내면 안 된다
(서울=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이 4천억 원에 육박하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5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회사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에 동의할지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회사채를 그냥 갖고 있으면 발행 기업이 파산해도 채권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주식은 모두 휴짓조각이 된다. 국민연금은 전체 1조3천억 원대의 대우조선 회사채 중 29%를 갖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결정은 우정사업본부(13%), 사학연금(7%)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일정 비율 이상의 회사채 채권자가 출자전환을 통한 손실분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2조9천억 원의 추가 자금 지원계획을 폐기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에는 일종의 법정관리인 'P플랜'이 적용된다.
국민연금은 투자위 회의 후 "대우조선의 재무상태와 장래 생존 가능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산은이 제시한 50% 출자전환(나머지 50%는 상환 만기 연장)과 P플랜 적용 시의 손실 규모를 정확히 산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P플랜으로 가면 출자전환 비율이 90%로 높아져 단순 계산으론 불리하다. 그러나 대우조선이 결국 회생에 실패할 경우 10%의 채권이라도 당장 확보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따가운 국민 여론과 정부의 은근한 압박도 국민연금을 부담스럽게 하는 듯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채권자의 의사가 중요하지만 P플랜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흘 뒤 "국민연금 등 채권자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 게 이익인지 이미 답이 나와 있다"며 압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과거 국민연금은 독립성, 수익성, 안정성 같은 연금 운용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도입 초기에는 정부의 주가 부양에 연금이 동원돼 손실을 보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도 국민연금이 연루됐다. 국민연금은 2015년 6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는데, 이로 인한 투자 손실액이 최소 1천4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뜻에 따라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구속기소 됐고,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는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3가지 가운데 대우조선 노조의 고통 분담은 이미 합의됐다. 노조는 작년 6월 인건비 20% 축소에 동의했고 이번 달부터 추가로 임금 10%를 반납하기로 했다. 시중은행의 채무조정 협의도 거의 막바지 단계에 있다고 한다. 결국, 회사채 출자전환 여부가 결정되는 17∼18일의 사채권자 집회가 대우조선의 운명을 좌우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이번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면 큰 실수는 피할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이다. 당연히 연금 가입자의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대우조선 회사채 처리 문제도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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