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 산책> 골프의 본질은 규정 준수다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렉시 톰프슨(미국)이 한꺼번에 4벌타를 받아 우승을 놓친 게 논란이다.
톰프슨은 3라운드 17번홀(파3)에서 30㎝ 보기 퍼트를 앞두고 집어 들었던 볼을 제자리가 아닌 곳에 내려놓았던 사실이 시청자 제보로 드러났다.
4라운드 경기 도중 이런 제보를 받은 경기위원회는 녹화 화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선두를 달리던 톰프슨에 4벌타를 부과했다. 결과는 다 알다시피 톰프슨은 3타차 선두 자리에서 밀려 내려왔고 결국 연장전에서 졌다.
논란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왜 유독 골프에서만 관중이 심판 노릇을 하느냐다. 심판도, 동반자도 보지 못한 규정 위반 사실을 관중이 신고해서 벌을 받는 건 다른 스포츠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다.
야구나 축구, 농구 등 다른 대중 스포츠에서 관중이 선수의 파울을 잡아내 심판에게 벌을 주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그걸 심판이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톰프슨 사태 때 드러났듯이 골프 선수들은 관중의 심판 노릇에 반감이 심하다.
두 번째는 어째서 지난 간 일을 소급 처벌하고 이중처벌을 하느냐다. 톰프슨이 규정을 위반한 건 3라운드였는데 하루가 지난 4라운드 도중 벌타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톰프슨은 규정 위반으로 2벌타를 받았는데 스코어카드 오기로 2벌타를 추가한 건 사실상 같은 행위에 두 번 처벌한 격이다.
이런 소급과 이중처벌 역시 다른 대중 스포츠에서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는 과연 30㎝ 퍼트를 하면서 볼 반개 가량 자리를 옮긴 게 경기에 어떤 영향이 있어서 저런 가혹한 벌을 내리느냐다. 톰프슨이 2.5㎝ 볼을 옮겨서 무슨 이득을 봤느냐는 항변이다.
녹화 화면으로 보면 홀에 더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뭔가 이득을 보려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가혹하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에 대한 해답은 사실 간단하다.
룰을 어기지 않으면 된다.
선수가 경기 도중 규정을 준수한다면 관중이 심판 노릇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급 적용으로 시끄러울 일도 없다. 이중처벌이냐 아니냐도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눈곱만큼 볼을 옮겨서 선수가 이득을 봤느냐 안 봤느냐를 따질 필요도 없다.
2시간 남짓한 경기 시간 동안 많게는 수십 차례 파울이 난무하는 축구나 농구와 달리 골프는 온종일 걸리는 경기를 나흘씩 계속해도 반칙은 큰 뉴스가 될 만큼 흔치 않다.
이유는 선수들 뇌리에 규정은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도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반칙을 전술의 하나로 여기기까지 하는 다른 종목과 다르다.
골프는 남이 보든 보지 않든 규정을 지키는 게 본질이다. 골프가 심판 없는 경기라는 말은 누구나 다 심판이라는 뜻이다.
선수 본인, 동반자, 관중이 모두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게 골프다.
경기위원이 보지 못한 규정 위반을 관중이 보고 신고하면 수용하지 않거나, 하루가 지나면 없던 일로 하거나, 특별히 선수가 규정 위반으로 이득을 본 게 없다고 판단되면 벌타를 매기지 않도록 룰을 바꾼다고 치자.
선수들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또는 '오늘만 무사히 넘긴다면' 그리고 '이게 뭔 대수라고'라는 마음으로 규정을 위반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골프를 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느꼈던 그 유혹 말이다.
규정은 무조건 지킨다는 그 본질을 훼손하면서까지 골프가 변해야 할 이유는 아직 없다.
혹자는 톰프슨의 '불운'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억울하다'고 했다.
톰프슨은 운이 나쁘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그는 볼을 마크해서 집어 올린 뒤 다시 놓을 때는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분명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벌타를 받았다.
주말 골퍼라도 경기 도중 톰프슨처럼 했다면 용납받지 못한다.
다행히 렉시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신고한 익명의 제보자도, 뒤늦게 벌타를 부과한 경기위원회도, 자신의 직장인 LPGA투어에도 어떤 원망이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톰프슨이 배운 건 규정은 지켜야 하고, 규정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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