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대권주자 마크롱, 은행 근무때 뛰어난 친화력으로 승승장구
전 동료들 "모르는 게 있으면 동료들에게 물어보고 다녀…네트워킹 탁월"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유력 대권 주자인 중도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39)이 투자은행 로스차일드 근무 시절 새로운 지식과 금융기법을 빠르게 학습하고 무엇보다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뛰어났다고 당시 동료들이 전했다.
특히 마크롱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류를 뒤지기보다는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본 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등 친화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마크롱의 전 동료들을 인터뷰해 마크롱의 로스차일드 은행 재직시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한 동료는 마크롱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면서 모르는 게 있어도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동료는 "마크롱이 (업계의 기초용어인)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며 "해당 내용을 책에서 찾기보다는 돌아다니면서 물어봤는데 이런 행동이 동료들을 무장해제시켰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프랑스 정치 엘리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2004년 공직에 입문했다. 금융감독 부처와 성장촉진위원회(일명 '아탈리 위원회)에 근무하다가 2008년 유대계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로 옮겼다.
마크롱이 로스차일드행 계획을 밝히자 그의 친구들은 나중에 정계진출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크롱은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투자은행에서 실물경제를 접한 뒤 나중에 올랑드 정부의 경제보좌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하게 된다.
로스차일드에서 일하던 마크롱과 몇 차례 마주쳤던 다른 인사는 "그의 경력에 비해 야망이 두 단계는 더 앞서 있었다"면서 "고난에 처할 법도 한데 그는 어떤 문제도 잘 피해갔다"고 말했다.
마크롱이 로스차일드에 스카우트됐을 때 그의 멘토를 맡았던 소피 자바리 현 BNP 파리바 유럽 기업금융부문 대표는 마크롱이 처음에 업계 용어와 금융지식이 부족했지만, 정부인사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면서 자신의 단점을 커버했다고 회고했다.
마크롱은 2010년 프랑스 기업 아토스의 지멘스 IT 부문 인수계약을 맡았을 때 엑셀 프로그램으로 금융모델을 수차례 반복실행하는 등 기초적인 일을 하며 관여하기 시작했지만, 계약이 성사된 이후에는 파트너로 승진했다고 한다.
몇 달 뒤 마크롱은 네슬레의 화이자 유아식 부문 인수계약을 따내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네슬레 이사회 의장은 페터 브라베크 레트마테였는데, 그가 과거 프랑스 성장촉진위원회 자문위원 시절 마크롱이 담당 공무원이었다. 이때의 인연이 마크롱이 계약을 따내는데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로스차일드에서 마크롱은 네트워킹의 기술을 익히고 프랑스 재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충돌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법도 하나둘 익힌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물론 프랑스 정·재계를 주름잡는 막강한 ENA 인맥이 작용했다.
마크롱은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공직에 돌아왔을 때는 은행에서 익힌 네트워킹 기술을 십분 활용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자동차 메이커 푸조시트로앵그룹(PSA) 이사회 의장에 ENA 동문인 루이 갈루아가 선임되도록 지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마크롱은 로스차일드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펴낸 저서 '혁명'(Revolution)에서 "직업이 무엇인지 배웠다. 모든 정치 지도자라면 다른 직업 하나는 가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은행 경력이 마크롱의 정치 진로에 도움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파리정치대학 뤽 루방 교수는 "마크롱에게 제기된 문제 중 하나는 그가 프랑스의 소수 기득권 엘리트의 상징이라는 것"이라며 "이는 그의 정치개혁과 부패청산 공약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