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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칭타오맥주 효과' 러·일 균형 깨지고 일제 조선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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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 2cm] '칭타오맥주 효과' 러·일 균형 깨지고 일제 조선 침략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한국에 진출한 중국 칭타오맥주가 긴장하고 있다.

이마트 수입맥주 시장을 올해 석권했는데도 기쁜 기색이 없다.

사드를 둘러싼 양국 갈등에 휘말리는 조짐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사드 보복에 당할 수만은 없다는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중국여행 피하고 칭다오맥주 마시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칭다오맥주 수입액은 2010년 이후 7배 이상 급증해 약 3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맥주다.

매출액 기준 세계 10대 맥주 가운데 2위에 올랐다.

젊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이 맥주의 이력을 보면 제국주의 흔적이 발견된다.

칭다오맥주는 서구열강이 동아시아에서 식민지 각축전을 벌인 19세기 말에 탄생했다.

당시 한반도는 외세의 상호 견제 속에 불안한 평화를 이어갔다.

일본은 1894년 조선 지배권을 놓고 청과 전쟁을 벌여 이겼으나 실속은 없었다.

한반도는 물론, 중국 동부 해안 지역을 장악했다가 머잖아 반환했다.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고종은 주변 열강의 역학구도를 간파하고서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에 1897년 암운이 드리워졌다.

독일이 중국 산둥반도를 점령한 것이다. 동아시아에 형성된 살얼음판 세력균형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독일 군대가 그해 11월 산둥반도 자오저우만(교주만)을 전격 점령한 탓이다.

독일은 자오저우만을 99년간 빌리는 조약을 청과 체결했다.

이어 독일군 동양함대 기지를 건설했다.

자오저우만 침략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다.

러시아는 독일 침공에 자극받아 1897년 12월 11일, 청 뤼순항과 다롄 항을 강점했다.

한국이 아닌 만주로 무력 진출할 목적에서다.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좋은 부동항이어서 오랫동안 군침을 흘린 곳이다.

이번에는 영국과 청, 일본이 반러시아 연대를 구축했다.

고립무원이 된 러시아는 '로젠-니시 협약' 카드를 꺼내 들었다.

1898년 4월 25일 도쿄에서 주일 러시아 공사 로젠과 일본 외상 니시도쿠 지로가 만나 협정을 체결하였다.

양국이 한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되 일본의 경제적 기득권은 인정하는 내용이다.

어느 쪽도 정치적 영향력이 우세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장치였다.







반러시아 연대에서 일본을 빼내는 이 협약은 조선에는 재앙이었다.

"한반도는 일본이 갖고, 만주는 러시아가 가진다" 합의가 담겼기 때문이다.

독일 진출을 계기로 산둥반도 남쪽 칭다오 경제가 활기를 띠었다.

독일이 맥주 생산에 필요한 양질의 지하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독일인과 영국인은 합작으로 이곳에 공장을 지어 1903년에 준공했다.

중국 1호 맥주 회사다.

생산 설비와 원재료는 독일에서 들여왔다.

칭다오맥주는 1906년 뮌헨국제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을 정도로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칭다오맥주 탄생 1년 뒤에는 일제의 동아시아 야욕이 노골화했다.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서 조선을 보호국으로 편입했다.

서양 열강이 세력균형이 깨진 한반도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진출에 아무런 방해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완용 등 매국노들이 을사늑약 체결에 이어 5년 뒤에는 주권을 통째로 일본에 넘겼다.







결국 독일 자오저우만 침략으로 러·일 전쟁이 발발했고, 한반도 세력균형이 깨져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시작된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변화를 일으키듯 칭타오맥주 탄생 배경이 된 독일의 산둥반도 침략이 한반도 식민지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칭타오맥주는 독일의 1차대전 패전 이후 중국 국영기업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칭다오맥주 유한공사로 변경됐다.

일본이 러시아를 꺾고 한반도는 물론, 중국 본토까지 침공했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도 러일전쟁 피해국이다.

러일전쟁은 칭다오맥주 탄생 배경인 독일의 산둥반도 침략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은 공동 아픔이 밴 칭다오맥주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두 나라 젊은이들이 칭타오맥주를 마시며 공존하는 방안을 고민하도록 외교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이 대외정책 기본방향으로 줄기차게 강조해온 구동존이(求同存異)가 해법이다.

양국이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 노선이다.

had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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