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 금지"…대학가 황당한 '규율 강요' 여전
군기잡기식 말투·인사·옷차림 간섭에 "비참…자퇴 고민"
경찰 "과도한 지침도 '악습 및 갑질' 신고 대상"
(수원=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1.'다나까' 말투 사용, 2. 너무 밝은 염색 금지 3. 여학생 짧은 치마 금지, 4. 슬리퍼 금지, 5. "∼하겠다" 통보 말고 "∼해도 되겠습니까"로 묻기.
최근 경기도의 한 4년제 사립대학교 체대에서 신입생들에게 나눠준 지침 내용 중 일부다.
신입생들은 군기 문화 중 하나인 '규율 강요'가 대학에서 여전히 만연하다며 괴로워하고 있다.
후배들은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적인 부분까지 규제받는다고 주장한다.
한 신입생은 "학과 문화에 충격을 받고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면서 "선배들이 말도 안 되는 규칙을 강요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걸 보면서 힘든 수험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나 자신이 비참해졌다"고 토로했다.
규율과 지침은 보통 '예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충청도 모 대학의 간호학과는 모바일 메시지를 통해 신입생들에게 '인사 예절 공지'를 전달하면서 "인사는 어디를 가나 예절이므로 최소한 선배님들께 예의는 지켜야 한다"면서 "개강일부터 모든 사람에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이라고 인사하고 인사법은 토씨 하나 틀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광주광역시의 한 대학교 항공학과도 "서비스맨이 지켜야 할 기본은 예절을 지키는 것"이라며 "'다나까' 사용하기, 인사 잘하기, 문자 보낼 때 이모티콘 사용하지 않기" 등의 규정을 내세웠다.
모 여대 체대는 "선배한테 술을 받을 땐 두 손으로 공손히 받고, 술을 마실 땐 낮은 학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시라"며 술자리 예절지침을 지시했다.
한 대학생은 "만약 17학번이 말을 안 듣거나 규율을 어기면 16학번은 그 윗학번에게 혼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규칙준수를 더 강요하게 되는 것 같다"라면서 "선배들도 신입생 때 선배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관행'으로 여기며 악습을 대물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후배 대부분은 이런 규칙들을 지키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대학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익명 SNS에 문제를 제기할 뿐 선배에게 직접 말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대학 내 고질적인 갑질 행위와 악습 등을 근절하기 위해 이달 말까지 대학마다 핫라인을 설치,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 중이다.
선·후배 간 위계질서 확립을 빙자한 폭행이나 상해, 갈취행위, 성범죄와 더불어 과도한 학과 규율과 지침도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선배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규율을 정하고 강제한다면 '갑질'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강요'라는 뜻의 범위는 넓기 때문에 학생이 일단 가혹행위라고 판단한다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2일 "어른들의 권위주의, 꼰대 문화를 지적하는 대학교에도 서열 문화가 스며든 일종의 모순적인 현상"이라며 "규율을 강요하는 선배들도 신입생 시절 분명 똑같은 경험을 했을 텐데, 악습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너희(신입생)도 견뎌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학생들이 생각을 바꿔서 자체적으로 악습을 없애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학교가 나서 학생들을 상대로 꾸준히 교육하고 화합의 장이 되는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자체적인 노력을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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