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법원 "난민신청자 비자 안줘도 돼"…포용기조 휘청
레바논 주재 벨기에 대사관 문두드린 알레포 일가족 최종 퇴짜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박해 우려를 호소하는 난민신청자들이라도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유럽연합(EU) 최고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난민 신청이 예상되는 한 시리아 가족의 비자 신청을 거부한 벨기에 정부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7일(현지시간) 판결했다.
작년 10월 시리아 내전 최대 격전지이던 알레포에서 탈출한 이 가족은 고문과 비인간적 처우를 당한 위험이 있다며 레바논 주재 벨기에 대사관에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재판소는 이런 상황에서 제3국 국민에게 비자를 주면 잠재적 망명 신청자들이 전 세계에 있는 EU 회원국 대사관에 피신처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소는 "대사관에서 신청자들에게 비자를 내주면 EU 망명 체계의 전반적인 구조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벨기에의 손을 든 사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상당히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심리가 진행 중일 때는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이들인 만큼 단기 비자를 주라는 판결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견됐었다.
뜻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이번 판결이 EU 망명·난민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FT는 보도했다.
난민 권리를 옹호해왔던 인권단체 등은 이번 판결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EU는 난민들에게 유럽 대륙으로 들어올 수 있는 안전한 경로를 보장한 필요가 있다며 이번 판결은 합법적인 난민 신청의 통로를 막아 위험한 해상 밀입국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티브 피어스 영국 에섹스대학 교수는 "인권 측면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결국 이러한 판결에 따라 많은 난민이 밀수업자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고, (해상 밀입국에 따라) 난민들이 익사할 위험성도 높아질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반기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테오 프랑켄 벨기에 이민부 장관은 트위터에 "우리가 이겼다"며 "비정부기구들은 EU의 국경을 해외의 유럽 대사관까지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ECJ의 판결은 회원국이 이러한 의무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적었다.
이번 판결은 포퓰리스트 정당 주도 하에 반(反)이민·반난민 정서가 유럽 내에 확산하자 각국 정부가 난민 포용정책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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