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선풍에 고립무원된 메르켈의 독일
美-英 이탈 속 佛 대선 극우 장악하면 EU 붕괴 수순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보호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체제 출범으로 예기치 않게 서방세계의 지도자 위치로 올라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독일이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그리고 점증하는 역내 반 유럽연합(EU) 정서 속에 고전하고 있다.
과거 나치 독일은 침략적 팽창주의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독일 자체의 문제보다 주변국들의 상황 변화로 고립에 처한 상황이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가이디언 래크먼은 7일 독일에 '책임'이 있다면 서유럽의 전통인 진보적 가치관을 고수한 때문이라면서 EU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포퓰리즘 선풍 속에 지금은 오히려 이것이 국제사회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독일 주변은 적대적 세력들로 가득하다. 동쪽에서는 더욱 권위주의적이면서 독일 혐오를 조장하는 폴란드와 헝가리와 인접하고 있고, 더 동쪽으로는 적대적인 러시아가 버티고 있다.
서쪽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북쪽으로는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 그리고 남쪽으로는 골치 아픈 나라들인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있다. 이들 양국은 모두 자국의 경제난 책임을 독일에 돌리고 있다.
EU의 양대 축인 인접 프랑스도 대선을 앞두고 상황이 불안하다.
독일이 이처럼 비우호적인 세력들에 둘러싸이게 된 것은 독일 자신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 포퓰리즘과 민족주의가 유럽과 미국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켈 독일 정부는 유로화와 난민 위기 대처 과정에서 일부 비난을 받고 있으나 국내외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고수하고 있는 점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정상적인 국가 독일이 현재 상황에서 오히려 예외적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국가로서 가치관이 서방에서조차 규범이 아닌 예외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래크먼은 분석했다.
현재 독일이 당면한 여건은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지난 2008년 중반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상주의자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를린을 찾아 독일인들에 연설했고 러시아에서도 보다 친서방적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블라디미르 푸틴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했다.
남유럽 국들은 경제가 양호했고 영국과 프랑스에는 친 EU 정부가 건재하는 등 독일 주위에는 EU 통합을 지지하는 우호적인 정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10년도 채 되지 않아 상황이 일변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선택으로 유럽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국가를 상실하게 됐고, 또 다른 회원국들에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타격을 받았다.
유럽이 실제 붕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다.
또 유럽에 잔류하는 회원국들이 EU의 기본 가치와 경제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독일에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인접 폴란드와 헝가리의 경우 민족주의 대두 속에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상황은 뚜렷한 처방이 없다는 점에서 독일에 크게 우려스러운 것이다.
EU라는 조직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보호막이 될 것이라는 본래의 기대가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치러질 네덜란드와 프랑스 선거도 주목거리이다. 만약 프랑스에서 극우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브렉시트에 이어 EU가 실제 붕괴 수순에 들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독일 정가에 팽배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유로화 위기 영향으로 친유럽 중도정당이 쇠퇴하고 포퓰리즘적이고 유럽 회의론자인 오성운동당이 득세하고 있다. 조만간 집권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리스도 조만간 재정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 정세도 독일에는 불리한 상황이다.
독일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측 제재를 주도하면서 러시아와 적대적 골이 아주 깊어진 상태이며 역사적인 측면에서 러시아와의 적대적 관계는 독일측에 상당한 심리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러시아와 대적하는 데 미국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으나 트럼프 시대를 맞아서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트럼프 정부는 오히려 메르켈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의 서방동맹에 대한 공약에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주변 정세 악화 속에 특히 오는 프랑스 대선 결과는 독일에 매우 중요하다. 만약 친 EU 주의자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될 경우 독일과 프랑스가 다시금 합심해 유럽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반대로 르펜이 승리할 경우 다시금 고립무원에 빠질 것이라는 독일의 악몽이 완성 단계로 들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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