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진보한다는데 폭군은 왜 계속 등장하는걸까
신간 '폭군이야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역사가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테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관계 전문가인 월러 뉴웰 미국 칼턴대 정치학 교수는 이에 맞서 "역사가 과연 진보한다면 왜 폭정과 전제정치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는 물음을 던진다.
신간 '폭군 이야기'(예문아카이브 펴냄)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폭정을 휘두르는 권력 집단은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부터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달리하며 존재해왔다.
폭군의 유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로마의 네로 황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장군 같은 인물은 국가와 사회를 사유재산으로 여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이용하는 '전형적인 폭군'으로 분류된다.
'개혁형 폭군'은 법과 민주주의에 제한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하고 명예와 부를 소유하고 싶은 열망으로 움직인다. 제한 없는 권력을 활용해 국가와 국민의 수준을 발전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 폭군'과 달리 후세에 긍정적인 평가와 존경을 받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프랑스 루이 14세 등이 이 유형이다. 그러나 책은 이 유형이 합법을 위장해 권력을 독점하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자신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폭군이고 독재자라고 본다.
마지막 '영원불멸형 폭군'은 영속적인 왕국을 꿈꾼다. 이 왕국에서는 개인이 오직 하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완벽한 조화를 표방하는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 전쟁과 대량학살도 불사한다. 스탈린과 히틀러, 마오쩌둥,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여기에 속하는 폭군이다.
폭군들의 사례를 하나하나 살피며 3천년간 폭정의 역사를 서술한 저자는 폭정이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되는 것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폭군은 이제 사라졌으며 폭정처럼 보이는 정치 행위도 진보의 과정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러므로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인 폭군'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관점에서 단순히 '역사는 진보한다'는 식의 장밋빛 환상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현대인들이 경제발전과 세계화, 개혁과 성장 같은 가치에 집착하느라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의 구분에 무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무늬만 민주주의인 사회에 살면서도 그것이 폭정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적어도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폭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더 엉망인 정권이 들어서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부의 자유로운 국민으로서 역사·철학·문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성을 무장(武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진하 옮김. 54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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